1990년대 서태지가 불을 놓은 한국의 가요는 이전과는 확 달랐다. 랩 풍이라고는 “서울 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나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전부인 줄 알았던 세대에게 신세계를 열어준 순간이었다. 여기에 유려한 몸동작으로 띄운 볼거리까지 내세운 파워풀한 ‘멜로디, 랩, 댄스’는 한국가요의 ‘3종세트’가 됐다. 때마침 판이 깔린 것도 호재였다. 드라마가 비장하게 개척한 한류의 등에 덥석 업혀서는 세계로, 아니 일단 아시아로 뻗어나갔다. 선배가 띄운 운을 후배 아이돌이 받아쳤다. 노래가 좀 떨어지면 어떠랴. 잘생긴 외모로 우르르 몰려나와 정신만 쏙 빼놓으면 됐지. 시각적 즐거움, 그게 우리 무기인데.
그래서 뭔가 대접받고 싶었다. 서구의 팝은 맞지만 ‘완전 한국식’인 이 특별한 놀이판을 확실하게 가름할 그것! 코리안 팝? 그래 K팝(K-Pop)이야. 이후 K팝이란 용어는 LTE급으로 언론·정치·경제영역을 관통하는 신조어로 우뚝 섰다. 단순히 한국가요,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결같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엉뚱하게 정치·경제적 이유가 발목을 잡기도 했다. 어찌 됐든 훌륭히 정착했다. 2012년 ‘K팝’이 옥스퍼드사전에 등재되기에 이르렀으니.
한해가 저무는 마당에 되돌아보니 올핸 유난히 K에 대한 사랑이 컸다. 특히 정부가 극진했는데, 연초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한마디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K가 우리 문화의 글로벌경쟁력인 것이 확인됐으니 K를 우리 고유의 브랜드로 정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더랬다. 야심 찬 마스터플랜도 냈다. “글로벌시장서 경쟁하는 서비스산업을 모두 K서비스라 칭하겠노라.” 그러곤 K메드, K투어, K에듀, K디자인 등을 줄줄이 불러내 글로벌서비스화하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신선했다. 의미도 있었다.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외국인이 더욱 열광했으니. 자진해서 K를 불러줬으니. 그런데 이쯤 되면 아니다. 과연 오매불망 목을 매는 K가 한국의 품격과 독창성을 휘날리는 공을 해외에서 제대로 세우고 있긴 한 건가. 한국적인 DNA를 찾아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게 목적이라는데 정말 그런가. K부터 달고 보자는 것이? ‘너무 아픈’ 아니 ‘너무 많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난 그 사랑에 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