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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황현규 손의연 기자] “버닝썬 게이트가 터진 후 친구들이랑 급하게 카카오톡 단체대화방(단톡방)을 나갔다 다시 만들었어요.”
이모(29)씨는 최근 대학교 친구들과 만든 단톡방을 지웠다 다시 만들었다. 그동안 친구들과 주고 받았던 야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지우기 위해서다.
폭행사건·경찰유착·성관계 불법 촬영 논란으로 번진 버닝썬 게이트가 시민들의 일상도 바꾸고 있다. 평소 장난처럼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주고받는 야한 농담이나 동영상 등을 지우거나 연예계에 혐오를 느껴 `아이돌 탈덕(팬 활동을 중단)`을 하는 식이다. 또 돈을 걸고 게임이나 골프, 당구를 즐기던 시민들은 내기를 자제하고 중장년층 부모들은 자녀의 클럽 출입을 단속하는 풍경도 등장하고 있다.
버닝썬 게이트 탓에 일반인도 “카카오톡 주의보”
연예인의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시작된 버닝썬 게이트가 터진 이후 시민들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부분은 바로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다. 사용자들은 평소 지인과 채팅방에서 주고받던 야한 사진과 영상을 삭제하고 사설 정보지(지라시)를 주고받은 흔적을 없애기 위해 채팅방을 나가기도 한다. 일부는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텔레그램으로 갈아타며 서버에 남지도 않고 캡쳐도 안된다는 비밀대화 기능을 이용하기도 한다.
최근 직장인 박성우(30)씨는 버닝썬 게이트 이후 단톡방에 선전포고를 했다. 평소 장난처럼 주고받던 야한 농담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비록 농담일지라도 제 3자가 보기에 불쾌한 내용이거나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또 야한 사진을 앞으로도 주고받지 말자고 약속했다. 박씨는 “버닝썬 게이트를 보면서 카카오톡 채팅방이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일상적인 카카오톡 채팅도 조심해야겠다”고 설명했다. 카카오톡 채팅방에 있던 7명의 친구들은 박씨의 제안을 모두 수긍했다.
지라시 주의보도 내렸다. 지라시 작성·유포 행위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 특히 최초 유포자 뿐 아니라 무심코 지라시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 단순 유포자도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경찰은 유명 여자 연예인을 포함한 가짜 피해자 명단이 담긴 이른바 정준영 지라시 유포가 심각한 2차 가해를 일으킨다고 보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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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에 환멸”…아이돌 탈덕 외치는 팬들
빅뱅 멤버 승리(29·본명 이승현)의 성접대 의혹이 불거지고 난 이후 아이돌 그룹 팬 사이에서 팬 활동을 그만두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FT아일랜드의 전 멤버 최종훈(29)은 여성의 특정 부위를 찍은 사진을 친구들에게 유포한 혐의로 입건됐다. 아이돌 그룹 하이라이트 멤버인 용준형(30)도 불법 촬영물을 받아봤다고 시인했다. 상황이 이렇자 팬들은 `내 아이돌도 그렇지는 않을까` 의심하고 있다.
직장인 유서영(35)씨도 결국 4년 동안 좋아하던 아이돌 그룹에게 ‘탈덕’(어떤 분야나 사람에 대해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을 외쳤다. 비록 버닝썬 게이트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아이돌 그룹이지만 연예계 자체에 환멸을 느꼈다는 것이 이유다. 유씨는 “아이돌의 이면에 어두운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모습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유씨는 다음 달 예정된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 티켓을 양도했다.
A기획사 관계자는 “버닝썬 게이트 이후 팬들의 이탈현상을 막는데 주력하고 있다”며 “아이돌 그룹의 일상을 유튜브 등을 통해 더 보여주거나 세세한 일정을 공유하면서 팬들의 불안감을 없애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당구비 내기도 도박? 알쏭달쏭하면 하지말자”
버닝썬 게이트의 불똥이 연예인들의 고액 내기골프 논란으로까지 번진 것과 관련해 내기 놀이를 자제하자는 분위기도 형성됐다. 실제 정준영의 휴대전화에서 배우 차태현(43)과 개그맨 김준호(44)가 내기골프를 친 정황을 발견되자 해당 연예인들은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기도 했다. 강원도에서 골프장 캐디로 근무하는 박지우(30)씨는 “연예인들의 골프 내기가 논란이 된 이후 고객들도 조심하는 분위기”라며 “돈 내기 자체를 도박이라 하니 아예 안 하는 팀들도 많고 내기를 하더라도 큰돈을 걸지 않는다”고 전했다.
골프뿐만 아니라 당구나 게임 내기를 하던 시민들도 경각심을 가지는 모양새다. 분당에 사는 회사원 이원호(31)씨는 “회사 사람들과 재비로 당구, 게임, 축구 등을 하며 돈을 걸곤 했다. 연예인들의 친목 골프내기가 문제가 된 걸 보니 괜히 꺼림칙해 그만두자고 했다”면서 “그냥 이긴 편이 간단하게 음료수나 간식을 사는 식으로 게임을 마무리한다”고 말했다.
“클럽, 알고 보니 불법 천지”…마음 심란한 중장년층
버닝썬 게이트를 바라보는 중장년층의 마음도 심란하다. 젊은이들의 놀이터로만 이해했던 클럽의 민낯을 봤기 때문이다. 버닝썬 게이트가 마약 유통과 투여 등으로 번지면서 `클럽=불법의 온상`이라는 기성세대의 인식도 강해지고 있다. 이에 자녀의 클럽 출입을 감시하는 부모도 덩달아 늘고 있다.
서울에 거주 중인 부산 출신 김주안(26)씨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자정만되면 엄마의 전화를 받는다. 버닝썬 게이트가 터진 이후 부쩍 딸의 위치를 감시하는 전화가 늘었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특히 엄마가 클럽을 가지 말라는 잔소리를 많이 한다”며 “매일 카카오톡으로 버닝썬 관련 뉴스를 보낸다”고 말했다. 20대 자녀 2명을 두고 있는 박성문(54)씨도 “드라마 속 장면처럼 클럽이 단순히 술을 마시고 노는 곳인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다”며 “만약 내 자식들이 클럽 다녀왔다고 하면 크게 실망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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