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in | 이 기사는 08월 18일 08시 35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in`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
개정 상법이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과 영토 확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관심을 끌고 있다. 당장 삼성그룹을 비롯해 국내 대기업 집단 대부분이 2·3세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다. 제도의 변화는 승계 전략에도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이전보다 유연해진 합병 제도가 대표적이다.
당장 옥상옥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는 SK(003600)그룹과 이미 계열사간 합병을 진행하고 있는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개정 상법이 그 같은 작업을 좀 더 수월하게 해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채 발행 한도 폐지와 발행 절차 간소화 역시 바뀌는 합병 제도와 맞물려 지배구조 개편작업에 효력을 발휘할 전망이다.
다만 개정 상법이 투명한 경영을 요구하고 있는 부분은 기업에 부담이다. 자기거래 규제 강화나 사업기회 유용금지가 그렇다. 최근 몇 년간 대기업들이 계열사에 물량 몰아주기를 통해 오너 2·3세의 그룹 승계나 재산 증식을 해왔던 관행에 일정 부분 제동을 걸 것으로 예상된다. 개정 상법이 지배구조와 구조개선, 그리고 M&A를 통한 확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망해 본다.
40년 만의 개정…키워드는 ‘기업자유’ “이번 개정 상법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경영을 편리하게 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방안들을 도입해 `기업하기 좋은 법적 환경`을 마련해 주는 법안입니다.” 2005년 개정 논의를 시작해 올 초 국회를 통과한 개정 상법에 대한 법무부의 설명이다. IMF 이후 타의에 의해 상법이 부분적으로 바뀐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 스스로 바꾼 것은 처음이라 할 수 있다. 상법 회사편도 바뀌는 조목이 250여개에 달하고 있다.
회사편에서 주목할 만한 변경 사항들을 보면 법무부의 설명이 쉽게 이해가 간다. 현재는 주식으로만 줄 수 있는 합병대가를 현금과 자산으로도 지급할 수 있게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합병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셈이다. 특히 합병법인의 대주주는 자신의 지분율 하락 가능성이 지금보다 낮아지면서 좀 더 공격적인 경영에 나설 수 있다. 소규모 합병 요건이 자산총액의 5%에서 10%까지 확대되는 것도 관심이다. 계열사간 통폐합 등이 수월해지고 결과적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동섭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상법 회사편 개정의 핵심은 기업의 신속한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자유로운 M&A를 촉진하며, 원활한 자본조달이 가능하게 하는 등 시장과 주주의 역할을 강조하는 영미식 상법시스템을 상당부분 도입했다는 점”이라며 “전반적으로 기업의 M&A 및 경쟁력 확보, 자본조달 등 본원적 활동범위를 크게 확대시켰다”고 평가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SK C&C(034730)-지주회사 SK-그룹 자회사들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난 2007년 지주회사로 전환했으나 최근 SK네트웍스가 보유한 SK증권 지분이 공정거래법 위반 상태에 놓이는 등 4년이 지난 현재도 지배구조 정비를 마무짓지 못하고 있다. SK증권도 문제이지만 C&C와 지주회사 SK로 이어지는 옥상옥 구조를 해소해야 지주회사 체제가 완성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대로 가져가도 문제가 없어 보이나 C&C는 지금껏 부채를 늘리는 방식으로 자산을 키워 지주회사 편입을 회피해 왔다.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C&C와 SK가 합병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하지만 지금 체제에서는 지주회사 SK의 덩치가 C&C에 비해 워낙 커 최태원 회장의 지분율이 낮아지면서 지배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우스갯소리로 C&C의 주가는 뛸 수밖에 없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그래야 지분율이 덜 희석될 테니 말이다. 합병 대가로 주식 대신 현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되면 최태원 회장 입장에서는 지분율 희석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도 합병 대가 유연화는 정의선 부회장 체제 확립에 도움이 될 여지가 많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정몽구 회장을 정점으로 크게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띄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등 주력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나 정의선 부회장은 주력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것이 기아차 1.99% 외에는 전무하다.
롯데 등 계열사 통폐합 추진 기업에 유용 소규모 합병제도 변화는 계열사 통폐합 등 구조조정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카드다. 현재 상법은 흡수합병시 소멸회사의 주주들에게 교환해 줘야 할 존속법인의 주식가액이 존속법인의 가치대비 5% 미만인 경우 주주총회 결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합병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5% 이상일 경우 합병하는 회사와 합병당하는 회사 모두 주주총회를 거쳐야 하고 주식매수청구권도 주주에게 부여해야 한다. 개정 상법에서는 그 범위가 10%로 확대된다. 그만큼 별다른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합병할 수 있는 기업의 규모가 커지게 된다.
롯데그룹은 수년 전부터 석유화학 계열회사인 호남석유화학(011170)과 케이피케미칼(064420)의 합병을 추진해 왔으나 현재까지 완결짓지 못하고 있다. 2009년 실제 합병 진행 때에는 호남석유화학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규모가 당초 예상치 계획을 웃돌면서 합병에 실패했다.
두 회사가 합병한다고 가정해 보자. 7월15일 현재 호남석유화학의 시가총액은 14조원이고 케이피케미칼은 2조5000억원 가량이다. 호남석유화학은 케이피케미칼 지분 51.86%를 보유하고 있다. 호남석유를 제외한 케이피케미칼 주주들 지분가치는 1조2000억원으로 호남석유 가치의 8.6% 가량이 된다.
개정 상법이 시행되면 호남석유는 이사회 결의와 2009년 당시 발목을 잡았던 주식매수청구권 부담 없이 합병을 진행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케이피케미칼은 주주총회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이전보다 한결 수월해진 환경에서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롯데그룹은 롯데쇼핑이 롯데미도파 합병을 검토하고 있는 등 유통 부문 계열사들의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다. 소규모 합병 요건 완화는 유통 부문 통폐합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여지가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소규모 합병 제도 변경과 관련, “기업구조조정을 더욱 쉽고 빠르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4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4호 마켓in은 2011년 8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81, bon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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