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시절 1920년대 일본에서 처음 건너왔다. 국내에서 자체 생산을 시작한 것은 1930년대다. 첫 출생지는 부산이다. 지금의 ‘연탄’이란 이름을 갖게 된 건 1961년 정부가 규격을 처음 지정하고서부터다. 이전에는 온몸에 구멍이 뚫려있다고 해서 ‘구공탄’ ‘구멍탄’으로 불렸다.
20~30년 전까지만 해도 겨울철이면 귀한 몸이었다. 집안을 덥힐 뿐 아니라 다 타고난 난 미끄러운 눈길을 지키는 지킴이 노릇도 했다.
나는 한국의 경제성장기에 서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다. 하지만 연탄가스 중독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빈발하고 도시공해의 주범으로 몰린데다 각 가정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집밖으로 쫓겨났다.
각 가정에 기름보일러 보급이 늘어나고 아파트 건설 붐이 일면서 도시가스 공급으로 나를 찾는 사람은 계속 줄고 있다. 지금은 ‘에너지 빈곤층’(전기료와 연료비, 난방비 등의 비용이 소득 10% 이상을 차지하는 계층)이나 ‘연탄구이’ 식당만이 나를 필요로 한다.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가정의 78%가 나를 주연료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1%도 채 안 된다.
정부가 최근 7년 만에 489원에서 573원으로 내 몸값을 올리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받는 타격이 크다. 가격 인상과 동시에 정부는 연료 금액을 지원해주는 ‘에너지 바우처’ 제도를 함께 실시하고 있지만 지원 대상은 기초수급자들 뿐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전체 가구의 절반 가량(7만 3000가구)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껌한통 값도 안되는 나를 구입할 돈조차 부담인 이들에게 기름보일러나 가스보일러는 실현 불가능한 사치다.
연탄봉사단체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이 해마다 저소득층 5만여 가구를 대상으로 나눔 활동에 나서는 이유다. 이런 까닭에 전문가들은 에너지 빈곤층 지원 사업을 좀 더 실효성 있게 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가)에너지 빈곤층의 정의는 넓게 잡았는데 실제 지원 범위와 규모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에너지 빈곤층의 정확한 기준과 필요한 지원규모 등을 설정한 뒤 세부적인 대안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윤태연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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