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은 그대로인데 모든 게 달라졌네. 제주도 이야기란다.
내 이름은 설문대 할망. 제주도를 만든 몸집 큰 여신으로 알려졌지. 치마폭으로 돌과 흙을 날라 육지를 닦았어. 섬 곳곳에 당시의 흔적이 남았지. 예를 들어 그때 치맛자락 사이로 흘린 흙이 쌓인 자리가 지금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오름이란다.
지금은 2030년 여름이야. 내가 섬을 주물럭거린 이후 제주 사람들이 이 땅에서 벌인 최대 역사(役事)라는 ‘제2 제주공항’ 사업이 마무리된 지도 벌써 5년이나 지났네.
처음 이 섬에 비행기가 뜨고 내린 것은 1942년이었단다. 일반 공항으로 이용한 건 1968년부터지. 큰 사건이었어. 항공기를 타고 관광객이 밀려들기 시작했거든. 벼슬살이조차 유배로 여길 만큼 섬을 나가기만 갈망하던 사람들 생각도 바뀌었지.
이후 60여 년간 섬은 큰 변화를 겪었어. 그런데 두 번째 공항이 문을 열자 불과 5년 새 또 몰라보게 달라졌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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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공항 앞 풍경은 하와이를 닮았어. 공항 청사 옆 야자수가 에워싼 15층 높이의 복합 단지 안에는 대형 쇼핑몰과 호텔, 컨벤션센터,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섰더구나. 원래 이곳은 섬사람들의 시조인 세 명의 을나(乙那)가 혼례를 올린 ‘혼인지(婚姻池)’가 있었던 유래 깊은 장소란다. 상전벽해가 따로 없는 일이지.
공항 건설이 일으킨 개발 바람이 워낙 거셌어. 2공항이 들어선 성산읍에는 원래 버려진 집터와 창고, 농장 등이 많았단다. 지금은 모두 옷을 갈아입었지. 당장 공항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인 해안만 봐도 그래. 요트 300여 척이 정박한 마리나항만이 조성됐잖니.
성산읍과 서귀포항 사이 시골 마을인 표선면, 남원읍도 확 달라졌어. 공항에서 남서쪽으로 새로 닦인 4차선 해안 도로를 따라 호텔과 카페, 리조트, 게스트하우스가 줄지어 들어섰지. 원래 제주도에서 감귤 농사는 이 동네에서만 지을 수 있었단다. 그만큼 기후가 온화하고 바닷바람도 잔잔하니 관광객과 투자자 낙점을 받은 거지.
하늘길이 넓어지자 섬 곳곳의 대형 개발사업들도 속도를 냈단다. 더 많은 휴양·레저 수요가 제주로 밀려들면서 투자에 불이 붙은 거지. 일례로 서귀포 해안 일대 항구에 요즘 10만t급 초호화 크루즈 수십 대가 하루에도 4만~5만 명의 중국인을 퍼 나르고 있더구나. 지지부진했던 관광미항, 헬스케어, 휴양형 주거단지 조성 사업들을 성공리에 마친 결과야.
새 공항이 부른 후유증도 없지 않단다. 치솟는 물가와 처치 곤란인 쓰레기, 늘어나는 범죄…. 섬의 옛 주인으로서 가장 아쉬운 것은 ‘제주도다움’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점이야.
올해는 제주도 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한 기념비적인 해야. 2공항 건설을 발표했던 15년 전보다 36만 명 정도 늘어난 거지. ‘제주 앓이’에 푹 빠진 청년층과 은퇴자 등 육지 사람들이 이삿짐을 꾸려 해마다 2만 명 넘게 바다를 건넌 결과야. 원주민의 풍습과 문화는 박물관과 기념품 가게에 가두고, 앞으로 이 섬이 뜨내기들의 값비싼 안식처로 변하리라는 건 과한 우려일까.
이 섬을 나만큼이나 아꼈다는 한 시인이 남긴 말을 떠올린다. “오, 제주도에 가서 제주도를 못 보고 와 버린 쓸쓸한 여행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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