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 “김영란법 보완할 정부안 마련못해”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17일 “김영란법의 ‘허점’을 보완할 추가 입법이 필요하지만, 지금은 그것까지 고민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 안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진도를 못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권익위에 따르면 다음달 28일부터 시행하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애초 정부 안에서 대폭 후퇴한 ‘반쪽짜리’가 될 전망이다. 김영란법의 핵심은 △공직자에 대한 부정 청탁을 금지하고 △공직자가 금품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더라도 처벌하는 데 있다. 문제는 여기에 2012년 정부 발의안에 담겼던 공직자의 이해 충돌 금지 규제가 쏙 빠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작년 3월 국회 법안 처리 과정에서 통째로 삭제됐다. 법 적용 범위가 너무 광범하다는 이유에서다. 사촌이 대기업에 다니는 기자는 대기업 관련 기사를 쓸 수 없게 된다는 식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해당 조항을 들어내니 지금의 김영란법은 공직자가 부정 청탁을 받으면 제재하지만, 거꾸로 공직자가 자기 지위를 이용해 친척을 취업시키거나 민간 기업 등에 청탁을 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맹점이 생겼다”고 말했다. 민간이 공공에 부탁하는 통로는 차단했지만, 반대로 공공이 권력을 남용해 민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사익을 추구하는 것은 제한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정치권도 대안 마련 ‘뒷전’…개별법에 전관예우 방지 조항 등 담아야
정치권도 현재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지난 1일 이해 충돌 방지 조항을 담은 김영란법 개정안을 발의하긴 했다. 하지만 이 법 개정안은 과거 논란을 불렀던 정부 안을 그대로 베껴 실효성 없다는 빈축을 샀다. 다른 의원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대안 마련을 미루고 있다. 야당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정부 원안을 중심으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등 방안을 검토 중”이라면서도 “구조조정 청문회, 국정감사 등 일정이 많다 보니 연말쯤에나 구체적인 가닥이 잡힐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직 부패를 뿌리 뽑으려면 김영란법 개정 또는 보완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시행령 조항에 불과한 식사·선물·접대비 상한액 규정에 논의가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개별법에서 언론인·사립학교 교직원 등 민간인을 이해 충돌 방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5급 이상 공무원 및 사법부 법관의 퇴직 공직자 접촉 금지 등 조항을 새로 담아 전관예우 같은 뿌리 깊은 관행을 없애자는 주장도 나온다.
윤태범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직자의 부당한 업무 수행을 막겠다는 김영란법의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이해 충돌 방지 조항을 최대한 빨리 입법화해야 한다”며 “법 제정 당시 논란이 됐던 사안들은 향후 논의 과정에서 다시 보완하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