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앞둔 임산부 이모(30)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남편과 함께 퇴근하기 위해 지하철에 탄 이씨는 임산부석에 앉으려 했지만 다른 사람이 앉아 있어 서서 갔어야 했다. 이에 남편이 “자리를 좀 양보해달라”하니 해당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은 “괜히 유세떤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결국 이씨는 집으로 돌아와 눈물을 펑펑 흘렸다.
임산부 배려석이 등장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임산부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외관상 크게 티가 나지 않는 초기 임산부나 사람이 붐비는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탄 임산부가 자리를 쉽게 앉을 수 없는 상황이다.
|
16일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임산부 배려석과 관련한 민원은 지난해 7086건에 달했다. 임산부 배려석은 2013년 12월 서울시를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산했지만 여전히 잡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임산부들은 임산부 배려석을 양보받기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임산부 카페 등에는 임산부 배려석을 양보받지 못했거나 오히려 면박을 들은 이야기가 쉽게 공유되고 있다. 다음달 출산을 앞두고 있는 전모(31)씨는 “핑크색 배지를 가방에 잘 보이게 달고 다녀도 자는 척하거나 보고도 모른척하는 경우도 많다”며 “저번에 한 번은 옆에서 자리를 비켜달라고 이야기하니 ‘여기는 배려석이지 비켜줄 의무가 없다’고 버텨 민망해 자리를 뜬 적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초기 임산부들은 외관상으로 티가 나지 않아 자리를 양보받기 힘든 실정이다. 이에 일부 초기 임산부들은 눈치 보이는 임산부 배려석보다는 서서 가거나 일반석에 앉아가고 있었다. 임신 12주차인 박다운(31)씨는 “퇴근하고 나면 임신 전보다 훨씬 피로해 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눈치가 보여서 차마 비켜달라고 하지 못한다”며 “그냥 참고 서서 가는 편”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
임신 중기에도 이같은 피로감은 이어진다. 게다가 각종 부종이 심각해진다. 특히 발의 경우 230㎜를 신다가 255㎜를 신을 정도로 붓는다. 이로 인해 다리에 쥐가 발생하기도 하고 손 저림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임신 말기에는 자궁이 크게 부풀어 오르며 주변 장기에 압력을 준다. 이에 소화도 힘들게 되고 숨쉬기가 어려워지는 증상을 겪기도 한다. 오랜 시간 서 있을 경우 조산의 우려가 있어 오래 서 있는 것도 자제돼야 한다. 게다가 출퇴근길 만삭의 몸으로 서 있다가 출근길 인파에 밀린다면 위험한 상황까지 맞닥뜨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배려석’이 아닌 ‘우선석’으로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본의 경우 ‘우선석’이라는 개념으로 임산부 등을 위한 좌석을 마련한 바 있다”며 “임산부를 포함해 노인, 장애인 등 교통약자를 위한 ‘우선석’을 명확히 명시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