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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최근 가상 화폐 시세가 폭락하는 등 시장 환경이 급변하자 신규 투자 유입을 어느 정도까지 용인해야 할지 금융 당국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실명 거래 시스템을 구축해온 은행도 정부 눈치만 보고 있다.
18일 금융계에 따르면 국내 6개 은행은 이달 말까지 가상 화폐 실명 확인 입·출금 시스템 구축을 완료할 계획이다. IBK기업은행·KB국민은행·JB광주은행·NH농협은행·신한은행·KEB하나은행 등이다.
정부는 원래 이달 20일쯤부터 실명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려 했다. 그러나 가상 화폐 거래소에 다수 계좌를 발급해 준 기업은행 등 6개 은행을 겨냥한 금융 당국 실태 조사가 예정보다 길어졌다. 지난 11일에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가상 화폐 거래를 금지하겠다”고 발언하는 등 정책 혼선을 빚으면서 실명제 개시 일정도 열흘 남짓 뒤로 밀렸다.
가상 화폐 거래 실명제는 거래 대금이 어디서 입금되는지 출처를 명확히 해 자금 세탁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 가상 화폐 거래소는 거래소 법인 은행 계좌의 자(子) 계좌인 가상 계좌를 통해 투자자에게 돈을 입금받았다. 이 가상 계좌는 거래소에 가입한 회원 이름과 입금자 이름만 같으면 실제 회원(거래자)이 아닌 제3자도 돈을 넣어 이용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예를 들어 아버지가 아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가상 화폐 거래소의 가상 계좌에 아들 이름으로 거액을 입금한 뒤 아들이 자기 명의 은행 계좌로 이 돈을 출금할 수도 있다”며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면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사실상의 불법 증여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A은행 관계자는 “일반 가상 계좌는 거래소 등 기관이 자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은행이 서비스 차원에서 제공하는 것”이라며 “실명 거래 시스템은 은행이 거래자 개인 정보를 확인해 등록하는 등 가상 계좌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말했다.
은행 “신규계좌 발급해도 되나?”…정부는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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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6개 은행이 실명 거래 시스템 구축을 거의 마쳤지만, 금융 당국이 아직까지 명확한 활용 지침을 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은행들은 실명제 시행 후 신규 거래 계좌 발급 여부를 놓고 당국 눈치를 살피고 있다. 마음대로 계좌를 늘렸다가 자칫 정부 눈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광주·국민·하나은행 등 나머지 3개 은행의 경우 가상 화폐 거래소와 계좌 이용 계약을 맺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현재 구축 중인 실명 거래 시스템을 활용하려면 거래소와 우선 계약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은행들 역시 정부를 의식해 적극적인 영업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B은행 관계자는 “실명 거래 시스템을 실제 가동하려면 가상 화폐 거래소와 먼저 계약을 맺어야 한다”면서도 “정부가 거래소 계약 체결이나 가상 계좌 신규 발급 등을 은행 마음대로 하라고 명확하게 얘기한 것이 아니어서 현재는 거래소 접촉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처럼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가상 계좌 신규 발급이 거래 시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가상 화폐 거래 실명제 시행을 신규 투자 수요가 유입되는 시장의 ‘변곡점’으로 보는 투자자가 적지 않다. 이를 계기로 가상 화폐 가격이 다시 뛸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 방침에 따라 최근 급락하는 가상 화폐 시세도 변수다. 국내에서 거래되는 가상 화폐에 붙은 웃돈(김치 프리미엄)이 빠지면서 정부가 신규 투자 유입을 억제할 명분도 약해져서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실명 확인을 거친 가상 계좌 신규 발급은 은행이 알아서 결정할 부분”이라며 “시장 상황을 자세히 주시하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