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신경영’을 거론할 때 창시자인 이건희 삼성회장 다음으로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고인수 전 삼성인력개발원 부원장이다. 지난 1993년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선포한 직후 삼성그룹의 신경영 실천 사무국장으로 5년간 재직하며 ‘삼성그룹 변화와 혁신의 관제탑’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삼성인력개발원 책임자로 그룹 교육을 총괄하며 그룹원들에게 신경영을 전파하는 업무를 주도했다.
신경영의 주역인 고인수 전 부원장을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옆에 있는 아담한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얼마 전 ‘삼성 신경영 전도사, 행복찾기 멘토가 되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한 그는 지금도 신경영 전파를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찾아나설 정도로 신경영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그대로였다.
신경영 20주년을 맞이한 감회가 어떠하냐는 첫 질문에 그는 “내가 신경영 전도사가 된 것은 정말 우연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신경영 실천 사무국장으로 발령받은 한 임원이 막중한 업무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갑자기 사표를 내는 바람에 자신이 대신 맡게 됐다고 한다.
“삼성 신경영이 성공한 가장 큰 비결은 이 회장의 배수진 전략이다.” 고 전 부원장은 “당시 이 회장은 회사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다고 판단하고 조직원들을 깨우쳐주기 위해 극단적인 배수진 전략을 선택했는데 그게 다행히 먹혀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장라인이 가동 중이라도 불량이 발견되면 즉각 라인을 스톱시키고 그 문제를 해결한 후 라인을 가동시켜라”고 지시한 이 회장의 결단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당시 삼성전자에서 생산하는 제품 불량률이 높아 3만명이 제품을 만들고 6000명이 고치고 다니는 비정상적인 기업체질을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회사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는 게 이 회장의 판단이었다. 제품 불량률이 선진기업 대비 3.3배나 높을 정도였다.
당시 파격적인 아침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하는 이른바 ‘7·4제’ 도입과 구미공장에서 무선전화기 등 불량품 15만여대를 운동장에 모아놓고 모두 태워버린 ‘화형식’등도 이 회장이 그때 실행한 주요 배수진 전략으로 꼽았다.
이어 고 전 부원장은 삼성의 신경영 같은 조직내 혁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공감과 비전, 신념, 실천 네가지를 조직내에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조직의 변화는 진심으로 일하는 10%의 구성원들에 의해 이뤄진다”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신경영을 구체화하면서 세계적 기업이 된 삼성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강점으로 “이윤추구를 넘어선 핵심가치의 유지와 대담한 목표수립과 도전정신, 기업문화의 강력한 계승 및 발전”등을 꼽았다.
삼성의 미래를 위해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건희 회장은 성선설을 신봉하는 리더이나 그 아래에는 아직도 성악설형 리더가 많아 구성원들이 피로에 지쳐 있다”며 “삼성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회사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세계 최고의 전자업체가 된 삼성전자 같은 경우 “이제 적은 외부에 있지 않고 바로 그 내부에 있다”고 따끔하게 조언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삼성그룹 국내외 사업장은 물론 중앙정부, 지방행정기관, 사법기관, 언론사, 군 및 특수기관, 금융기관, 대· 중소기업, 협회, 단체, 연수원, 대학 등에 모두 770여 차례에 걸쳐 출강해 10만여 명에게 삼성 신경영 철학을 전파하면서 ‘신경영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현재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차세대 리더를 육성하기 위해 설립한 사단법인 ‘창조와 혁신’의 리더십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고인수(64) 전 삼성그룹 신경영 실천 사무국장은.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경영’ 실천 사무국장으로 그룹내 신경영을 전파하는 사령탑 역할을 하였다. 삼성 인재양성의 센타인 삼성인력개발원 책임자로 그룹 교육을 총괄하였으며, 삼성전자 부사장시절 성균관대학 상임이사로 파견되어 성균관대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신경영 전도사’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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