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달리하면 같은 사물도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땐 자기 논리만 강변하기 쉽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개인의 경험과 처지에 비춰 대상을 인식하는 인간의 한계를 두고 ‘동굴의 우상’이라 불렀다.
쌍용건설의 부실채권정리기금 청산작업을 보며 문득 든 생각이다. 채권금융기관과 정부, 채무자 쌍용건설 등 각자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안을 놓고선 모두 자기 논리만을 내세운다.
채권단은 언제 파산할지 모르는 기업의 주식을 왜 우리가 나눠 가져야 하느냐고 불만이다. 쌍용건설은 수 차례 매각에 실패하면서 기금 청산일까지 주인을 찾아주지 못한 대주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무능을 탓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기금이 보유한 잔여지분을 채권단에 떠넘기는 방법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을까? 물론 고민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가령 이 지분을 페이퍼컴퍼니(SPC)에 넘겨 SPC의 지분을 정부 등 출연기관에 넘기는 방법을 고민했다. 하지만, 앞으로 SPC 관리 비용으로 공적자금이 더 들어갈 수 있다는 벽에 부딪혔다.
이해관계가 대립할 땐, 서로 한 발짝 물러나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 중심엔 국민의 편익이 있다. 서로가 “한 푼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자세보단 전체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옳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고민거리를 안겨준 부실 책임자는 스스로 책임을 인정하고 물러나면 된다. 또 다른 코끼리(국민의 혈세)를 삼키는 보아뱀의 출연은 정부와 채권단, 건설사 모두가 바라지 않는 일일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