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속어와 꽃미남의 상관관계로 본 '쓰릴 미'의 흥행 비결[홍정민의 뮤지컬 톺아보기]

한국에서 큰 인기인 추리·스릴러 뮤지컬
비속어·금기어 등장, 번역 시 수위 조절 필요
실화 바탕 '쓰릴 미', 비속어·성적 뉘앙스 강해져
수려한 외모의 배우와 거친 언어의 '상승 효과'
  • 등록 2023-10-07 오전 9:00:58

    수정 2023-10-07 오전 9:00:58

한국 뮤지컬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데에는 라이선스 작품(해외 원작을 현지화한 작품)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해외에서 유명한 작품이라고 해서 한국에서도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관객의 기대와 수요에 맞게 적절히 현지화해야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 뮤지컬 번역 전문가인 홍정민 동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가 국내에서 크게 흥행한 해외 라이선스 작품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이들 작품이 어떻게 현지화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 주’

2017년 뮤지컬 ‘쓰릴 미’ 10주년 기념 공연 중 배우 최재웅, 김무열의 공연 장면. (사진=달컴퍼니)
[홍정민 동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통상 밝고 신나는 작품이 사랑을 받는 브로드웨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유독 어둡고 비극적인 소재의 작품이 인기를 끈다. 뮤지컬 예매 랭킹 10위권에 소위 ‘추리·스릴러’ 계열로 지칭되는 뮤지컬이 매년 2~3편씩 포진해 있다는 점은 이러한 작품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라이선스 작품도 마찬가지로, 매년 다양한 작품이 새롭게 선을 보이거나 재연되고 있다. 특히 ‘지킬 앤 하이드’, ‘잭 더 리퍼’, ‘쓰릴 미’ 등의 사례처럼 해외 원작보다 한국에서 훨씬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들 작품은 범죄, 동성애 등 자극적이거나 금기시되는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대사와 가사에도 비속어와 금기어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수위 조절에 많은 고민이 필요할 텐데, 흥행에 성공한 작품들은 이러한 표현을 어떻게 한국어로 옮겼을까?

여러 차례 강조한 바와 같이 뮤지컬의 번역 양상은 각 작품의 특성과 공연 당시 산업 및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만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특히 성공한 작품의 사례를 통해 단서를 얻을 수는 있다. 한국 초연 당시 동성애, 살인, 유괴, 방화 등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소재와 언어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흥행은 물론 이후 라이선스 작품 선정과 창작 작품 제작에 지대한 영향을 준 ‘쓰릴 미’가 대표적이다.

유괴살인 소재 2인극, 자극적 소재 우려 깨고 흥행 성공

2017년 뮤지컬 ‘쓰릴 미’ 10주년 기념 공연 중 배우 강필석, 이율의 공연 장면. (사진=달컴퍼니)
이 작품은 1924년 시카고에서 실제 발생했던 유괴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남성 2인극이다. 2003년 뉴욕에서 초연된 이후 2005년에는 오프 브로드웨이로 옮겨 공연되었다. 원작은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흥행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반면 2007년 한국 초연은 자극적 소재와 생소한 형식에 대한 우려가 무색하게 ‘회전문’ 관객의 열광적 지지를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고, 2022년까지 거의 매년 재연되면서 대표적 소극장 흥행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뿐만 아니라 이후 ‘자나, 돈트’, ‘베어 더 뮤지컬’ 등 동성애를 다룬 해외 작품이 잇따라 들어오고 ‘풍월주’, ‘트레이스 유’, ‘마마, 돈 크라이’ 등 유사한 콘셉트의 창작 소극장 뮤지컬(젊고 뛰어난 외모의 남성 2인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동성애 또는 이를 연상시키는 작품) 제작이 봇물을 이루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국 공연의 성공은 이처럼 국내 뮤지컬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준 것은 물론 이 작품이 전 세계 19개국에서 공연되는 데도 결정적인 기폭제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소재와 언어가 주는 거부감과 생소함 때문에 초연 제작 당시 성공에 대한 우려와 회의 섞인 시선이 컸다. 배우나 번역자 역시 번역의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하지만 초연은 원문의 거칠고 날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고 이러한 모험이 통하면서 이 작품은 한국 뮤지컬 산업에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다. 특히, 한국어 가사와 대사에는 원문에는 없던 비속어나 금기어가 등장하거나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뉘앙스가 원문보다 강해지는 사례가 자주 발견된다.

예를 들어, ‘모두 너를 원해’(Everybody Wants Richard)라는 넘버에서 ‘나’는 ‘그’가 만나는 다른 여성들에 대한 질투심을 드러낸다. 원곡은 “Tell me who’s the girl in which sorority. I got word on good authority”(어떤 여학생 클럽의 누구인지 말해. 믿을 만한 사람에게 들었어), “How can you assume she’s worthy of you”(어떻게 그런 여자가 너와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 있니), “And I know there were several others according to your frat house brothers”(다른 사람들도 있다고 네 남학생 클럽 친구들이 말하더라)로 전개되며 비속어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 번역된 가사는 “말해. 어떤 여자야. 술집 년이지”, “정말 좋니? 그런 계집애가”, “그 년 말고 더 있다고 네 친구들이 떠벌렸지”로 이어지며 ‘나’의 분노를 한층 격하게 전달한다. 그 밖에 ‘good for just a kick’(즐기기에만 좋은)을 ‘쓰레기’로, ‘loser’(패배자)를 ‘병신’으로 옮기는 등 원문의 경멸적 뉘앙스가 좀 더 강해지기도 한다.

이후 나오는 ‘정말, 죽이지?’(Nothing Like a Fire)에서는 성적 뉘앙스가 원문보다 한층 강화된다. 두 사람이 방화를 저지른 후 부르는 이 넘버에서 ‘그’는 불을 보면서, ‘나’는 ‘그’를 보면서 감정이 고조되고 스킨십을 시작한다. 특히 각자 솔로로 부르던 넘버가 듀엣으로 합쳐지면서 감정이 클라이맥스에 다다를 때 “nothing like a fire”라는 가사가 두 차례 등장하는데, 언어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함께 나오는 제스처를 통해 성적 뉘앙스가 암시적으로 전달된다.

하지만 한국 공연에서는 이 가사를 “어루만져 주네”로 번역하면서 성적 뉘앙스를 좀 더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차이는 가사뿐 아니라 제스처에서도 두드러진다. 2005년 오프 브로드웨이 버전에서 두 사람은 어깨를 만지고 손을 잡는데 그치지만, 한국 초연에서는 좀 더 강한 포옹으로 바뀌며 10년이 지난 2016년 공연에서는 포옹과 함께 얼굴을 맞대고 손을 볼에 대는 제스처로 한층 과감하게 변모한다.

원작보다 수위 높은 번역, 관객 거부감은 크지 않아

2021년 뮤지컬 ‘쓰릴 미’ 중 배우 배나라, 이주순의 공연 한 장면. (사진=엠피앤컴퍼니)
이처럼 원문보다 수위가 높아진 가사와 대사에 대해 관객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지를 세세하고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작품의 흥행과 파급효과를 감안하면 최소한 관객들 사이에 이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는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번역된 가사와 대사는 여러 측면에서 캐릭터와 극적 전개에 기여함으로써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우선, 주인공들이 아무런 가책 없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10대 사이코패스임을 고려하면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가사와 대사는 캐릭터의 특성을 좀 더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다. 특히, 한국 공연이 이들 사이의 집착과 왜곡된 관계를 부각하고 그로 인한 비극적 사랑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둔 만큼 강렬하고 자극적인 언어는 관객들이 느끼는 감정의 진폭을 확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비공식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설명은 이 작품이 마니아 관객을 열광케 했던 지점과 맞닿아있다. 이 작품의 흥행은 외모가 뛰어난 젊은 남성 배우의 멀티 캐스팅을 통해 견인된 측면이 크다. 주지하다시피 ‘쓰릴 미’는 지창욱, 강하늘, 김무열 등 신예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여 젊은 여성 관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는데, 이들의 뛰어난 외양이 자극적이고 폭력적 소재에서 시선을 돌리고 거부감을 불식시킨 것이 주효했다는 해석이 자주 제기된다.

실제로 이는 한국 대중 문화 전반에서 자주 사용되어 온 전략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성소수자, 즉 LGBT가 등장하는 영화와 TV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어왔으며 ‘왕의 남자’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커피프린스 1호점’ 등의 사례에서 보듯 ‘꽃미남’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흥행 포인트였다. 뮤지컬에서도 마찬가지로, ‘헤드윅’, ‘킹키부츠’, ‘제이미’ 등 LGBT 소재의 작품들이 꾸준히 공연되고 흥행에 성공한 데에는 화려하게 치장한 남성 배우들의 ‘미모’가 큰 역할을 했다. 남성 배우들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전경화되면서 소재 자체가 지닌 사회적, 정치적 함의나 거부감과 생소함은 약화된 것이다.

이미 대중 문화에서 젊은 여성들을 상대로 검증된 전략이 이들 관객의 편중 현상이 특히 강한 뮤지컬, 그 중에서도 마니아 층이 주를 이루는 소극장 뮤지컬에서 갖는 폭발력은 훨씬 클 것이다. 번역에도 이러한 논리가 적용될 수 있으며 배우의 수려한 외모가 언어가 지닌 공격성과 선정성에 둔감해지도록 했을 수 있다. 심지어 배우들의 수려한 외모와 거친 언어가 상승 효과를 일으켰을 수도 있다. ‘지킬 앤 하이드’, ‘잭 더 리퍼’, ‘프랑켄슈타인’, ‘스위니토드’, ‘데스노트’ 등 국내 대표 흥행작에서 볼 수 있듯 젊은 여성 관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남성 배우가 비이성적으로 돌변하는 모습에 열광한다. 폭력적이고 강렬한 언어는 이러한 모습을 직접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결국, 수위가 높아진 대사와 가사가 캐릭터, 사건, 배우 등 그 대상이 무엇이든 관객의 공감과 몰입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핵심 관객층 겨냥한 번역 선택, 뮤지컬 지형 변화에 일조

2021년 뮤지컬 ‘쓰릴 미’ 중 배우 이석준, 김우석의 공연 한 장면. (사진=엠피앤컴퍼니)
여러 차례 강조하듯 번역에 정답은 없다. 특히 뮤지컬 번역과 같이 대사, 가사 등 언어 기호와 음악, 동작·제스처, 소품, 무대, 조명 등 비언어 기호뿐 아니라 산업적 특성, 사회문화적 배경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고 번역자, 연출자, 작곡가·작사가, 배우 등 다양한 참여 주체가 관여하는 복잡다단한 작업에서는 그 당시 상황에 맞는 최선의 선택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쓰릴 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의도 여부와 상관 없이 핵심 관객층의 수요와 잘 맞아 떨어진 선택은 작품의 완성도와 상업적 성공이라는 즉각적 성과뿐 아니라 국내외 뮤지컬 지형의 변화라는 장기적 발전에도 작게나마 역할을 할 수 있다.

* 본 칼럼은 2020년 출판된 ‘Taboos, Translation, and Intersemiotic Interaction in South Korea’s Successful Musical Theaters’ 제하의 논문 일부를 발췌 및 수정한 것입니다. 원작의 가사는 2006년 출판된 대본집(Thrill Me: The Leopold & Loeb Story)을, 한국 공연의 가사는 2017년 발매된 10주년 기념 OST를 참고한 것입니다.

△필자 소개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동국대 영어영문학부 영어통번역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뮤지컬 번역으로, ‘Taboos, Translation, and Intersemiotic Interaction in South Korea‘s Successful Musical Theaters’, ‘국내외 뮤지컬 번역 연구 현황 및 향후 연구 방향’, ‘패밀리 뮤지컬 번역과 아동 관객: ‘마틸다’를 중심으로’, ‘뮤지컬 번역에서 상호텍스트성에 대한 멀티모달적 고찰: ‘썸씽로튼’을 중심으로’ 등 라이선스 뮤지컬 번역 현상을 다각도로 분석한 논문을 A&HCI급 국제 학술지, KCI 등재지 등 국내외 저명 학술지에 활발하게 출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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