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선 스리랑카 다음으로 금리 인상의 첫 신호탄을 냈지만 미국이 예상보다 빠르게 테이퍼링 신호를 보내면서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국고채권 금리가 폭등(가격 급락)하며 패닉 상태에 빠진 것도 미국의 통화정책 변화에 따른 것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라는 큰 산이 움직이기 때문에 환율 등 경제의 주요 변수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내년 말까지 1200원대로 올라선 후 박스권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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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가 얼마나 더 오를 수 있을까. 금융위기 사례에서 보듯이 위기를 겪고 나면 잠재성장률이 추락하고 이에 따라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수준 또한 하락한다. 2000년대 초중반 4~5%였던 잠재성장률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3%대로 낮아졌고 코로나 위기로 2021~2022년 잠재성장률은 더 추락해 2.0%로 추정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는 상한선은 그리 높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로 금융위기 직전이었던 2008년 8월 기준금리는 5.25%였으나 위기 극복 후 2010년~2011년 김중수 총재가 금리를 올렸던 상한선은 3.25%였다. 이주열 총재가 코로나19 위기 전에 마지막으로 금리를 인상했던 당시 금리 수준은 1.75%였다. 그렇다면 현재의 금리 인상사이클이 1.75%를 넘어설 수 있을까에 의구심이 생긴다.
이데일리가 154명의 크레딧 애널리스트 및 채권 매니저, 브로커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59.1%)이 적정 기준금리 수준을 1.25~1.5%로 예측했다. 3분의 1(35.1%)은 1~1.25%를 전망했다.
일단 11월 기준금리 인상이 기정사실화된 만큼 이달 금리 인상 후 이 총재가 내년 초 인상 시그널을 어떻게 줄 것인지가 관건이다. 10월 한은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왜 금리를 올리지 않았을까 의구심이 생길 만큼 매파(긴축 선호) 스탠스가 강했다. 총재, 부총재(부총재는 역사상 단 한 번도 금리결정과 관련 소수의견을 낸 적이 없다)를 제외한 5명의 금통위원 중 2명이 금리 인상 소수의견을 냈다. ‘통화정책 완화 정도를 점진적으로 조정해 나갈 것’이란 통화정책 방향 문구를 ‘적절히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바꿨다. 무엇보다 문구 변화에 대한 이 총재의 해석에 주목해야 한다. 이 총재는 ‘점진적’이란 문구를 “시장에선 (금리 인상을) 한 번 건너뛰는 것으로 이해해 앞으론 이런 의미를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11월 금리를 인상하고도 다음번 금통위가 열리는 내년 1월 ‘연속 인상’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긴 것이다.
앞으로의 금리 인상 스텝에도 불확실성이 크다. 내년 3월엔 차기 대통령 선거와 이 총재 임기 만료가 겹친다. 차기 대통령의 임기는 5월에 시작되는데 차기 한은 총재 선임은 누가 할 것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은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한은 총재가 공석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은 총재가 공석이 되면 금통위원 중 한 명이 ‘의장직무대행위원’으로 금통위 의장 역할을 하게 된다. 내년 4월 이후 총재가 공석이라면 의장직무대행위원으로 금통위 회의를 주재할 금통위원으로 비둘기파(통화정책 완화 선호) 위원인 주상영 위원이 거론되고 있다. 즉, 대선 이후로는 통화정책의 방향은 예측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매파 성향(긴축 선호)의 금통위원들은 이 총재 임기 전에 최대한 금리를 인상하려는 유인이 강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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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 중앙은행이 위기 극복을 위한 돈 풀기를 서서히 끝내가고 있다. 캐나다(테이퍼링 종료), 뉴질랜드(금리 인상) 등과 함께 우리나라도 여타 국가 대비 앞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큰 산인 연준이 움직이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빨리 올리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이 총재는 5월 “연준이 완화 기조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을 조정하면 우리로서는 여지가 더 넓어진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연준이 생각보다 더 빠르게 테이퍼링에 나서고 있다. 내년 6월 테이퍼링을 모두 마치고 연방기금금리를 두 세차례 올릴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7월, 11월 두 차례 인상을 전망했다. 씨티는 내년 6월, 9월, 12월 세 차례 금리 인상을 예상했다.
연준이 테이퍼링을 하고 금리를 인상하는 과정에서 달러가 위로 튈 가능성이 높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엔 돈을 푼 후 2014년 테이퍼링을 시작해 2015년 첫 금리를 올릴 때까지 무려 7년여가 소요됐으나 코로나19 위기에선 이 기간이 단 1년만에 끝날 조짐이다. 압축된 시간 만큼 변동성은 더 커질 수 있다. 이에 조사 대상자의 절반 이상(57.8%)이 내년말까지 환율이 1200원대로 상승한 후 박스권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3분의 1(29.9%)은 1200원보다는 낮지만 1100원 후반대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측했다.
환율이 1200원대를 넘는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환율이 1200원선을 넘어 추세적으로 상승세를 보일 때는 늘 대내외 위기가 발생했던 시점이다. 2000~2003년 IT버블 붕괴, 신용카드 버블 사태,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0년 그리스 재정위기, 2015년 말~2016년 초 중국 신용위기, 작년 코로나19 팬데믹 등이 그 사례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환율이 다시 1200원을 찍더라도 그 이상으로 안착할 가능성은 낮게 점쳐진다.
주요국이 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살만해졌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미국 나 홀로 금리 인상이 아니란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달러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유로화, 파운드화 등, 이들의 방향을 좌우할 통화정책 역시 돈줄을 죄는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유럽중앙은행(ECB)은 12월께 테이퍼링 계획을 발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영란은행(BOE)도 내년 말까지 정책금리를 1% 이상으로 올린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32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 책자에 게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