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 재테크]그많던 월급은 어디로 갔을까?

  • 등록 2014-03-11 오전 8:23:46

    수정 2014-03-11 오전 11:30:47

[이데일리 성선화 기자] 그것은 아내의 제안이었다. 누군가는 먼저 불편한 진실을 언급해야만 했다. 매달 200만원 가까이 카드빚에 허덕였지만, 부부 중 먼저 진지하게 돈 문제를 터놓고 얘기하길 꺼렸다. 밤마다 맥주에 치킨을 먹으며 달콤한 신혼생활을 만끽했지만, 매달 불어만가는 빚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었다.

고정 수입 440만원…매달 카드빚만 200만원

지난 10일 저녁 8시 서울 상계동. 30대 초반을 보이는 선남선녀 커플이 커피숍에 들어섰다. 이들은 이데일리와 포도 재무설계가 공동으로 기획한 무료 상담이벤트 당첨자 커플이다. 지난 2주간 이벤트 신청자 중 재무설계가 필요한 독자들을 선별해 이번주부터 본격적인 상담에 들어갔다.

상담을 맡은 김성호 포도재무설계 CFP(국제공인재무설계사)는 미리 수입과 지출 현황을 받았다. 2년 전 결혼한 이들의 고정 수입은 약 440만원. 하지만 매달 지출은 들쑥날쑥했다. 지난달에는 600만원이었고 그 전달에는 800만원이나 됐다. 분명한 점은 항상 수입보다 지출이 많다는 사실이다.

본격적인 상담에 들어갔다. 이들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은 양가 부모였다. 아내 쪽 어머니의 병원비로 매달 50만원이 들었고, 남편 쪽 가족은 경조사비가 많이 들었다. 지난 1년간 경조사비로만 700만원 가까이를 썼다. 게다가 신혼집 마련을 위해 받은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70만원이나 됐다. 매달 고정 지출만 120만원에 달하는 셈이다.

이밖에 많이 든 지출은 식비였다. 한 달에 약 70만원이 나갔다. 김 CFP는 “신혼부부의 한 달 평균 식비는 40만원 정도”라며 “이들 커플의 식비는 아이가 둘인 가정가 맞먹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주범은 외식비였다. 아내는 즉흥적인 지출이 많다고 설명했다. 퇴근 후 치맥을 즐기는 이들 부부는 결혼 1년 만에 10㎏ 이상 몸무게가 늘었다. 남편은 “결혼 전까지 배가 나왔다는 게 뭔지 몰랐었다”고 털어놨다.

재테크에 남다른 관심…정작 문제의 핵심은 몰라

이들은 결혼 전에도 무계획적으로 펑펑 쓰며 살았을까. 놀랍게도 싱글일 때 이들은 월급의 절반 이상을 저축하며 검소한 생활을 했다. 아내는 월급 200만원 중 100만원으로 저축했고, 남편 역시 매달 80만원씩은 꼬박꼬박 저축했다. 하지만 결혼 후에 이들의 씀씀이는 주체할 수 없이 커져 버렸다.

김 CFP는 “대부분 둘이 살림을 합치게 되면 결혼 전보다 생활비가 적게 든다”며 “각각 매달 50만원씩 용돈을 썼더라도 결혼 후 둘의 용돈이 100만원으로 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결론은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였다. 겉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들 부부였지만 정작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선 외면해 왔다.

상담 내내 남편은 아내에게 월급을 다 맡기고 살림살이를 일임했다고 강조했다.

“가끔씩 아내가 잔소리를 하죠. 저도 할말은 많았어요. 하지만 싸움이 될까봐 참고 넘어갔어요.”

남편은 가정의 돈 문제는 아내에게 맡겼기 때문에 사사건건 간섭하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내의 입장은 달랐다. 그는 사소한 돈 문제에 대해서도 남편과 상의하길 원했다. “항상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죠. 남편이 너무 무심하다고 느꼈어요.”

대화 속에 답이 있다…매달 ‘재무대화의 날’을 정해라

이들의 대화를 들은 김 CFP는 “평소 아내와 남편이 돈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것 같다”고 진단했다.

남편은 아내에게 맡긴다는 ‘배려심’ 때문에 무관심했고, 아내는 혼자서 전전긍긍하는 상황이 늘 불만스러웠던 것이다.

이들 커플이 개선해야할 가장 큰 문제는 지출 통제다. 병원비, 대출 등 고정 지출을 제외한 순수 생활비를 250만원으로 낮춰야 했다. 물론 갑자기 쓰던 돈을 안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 CFP는 “이들 부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출에 대한 통제력”이라고 분석했다.

상담을 마친 부부는 갑자기 지출을 줄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에도 소비를 줄이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내는 늘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다. 여러권의 재테크 서적을 독파했고, 홀로 재무설계를 받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점은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이번만큼은 달라질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혼자가 아닌 남편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부부가 같이 재무상담을 받다보니 가정의 문제점에 대해 공동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전에는 혼자 재무 상담을 받고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긴 했죠. 남편한테도 얘기는 했어요. 하지만 남편이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러 버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남편은 솔직하게 자신의 문제를 인정했다. 그는 “이번 기회를 통해 현실을 직시한 만큼 앞으로는 달라져야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동안 솔직히 꺼내기 힘들었던 가정의 문제를 진솔하게 얘기할 수 있어 좋았다고 평가했다.

신혼부부가 첫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소위 ‘재테크 황금기’다. 김 CFP는 “신혼 부부가 이 재테크 황금기를 놓쳐선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김 CFP가 이들 부부에게 한 조언은 매달 ‘재무대화의 날’을 정하라는 것이다. 기업에도 결산일이 있듯 가정에도 한 달을 정리하고 다음달을 준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수천만원 빚에 허덕이는 부부들도 처음엔 다들 작은 카드빚에서 시작했다”며 “초기에 빚을 줄이고 소비를 통제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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