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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1. 중소 공연제작사에서 일하는 J팀장은 공연 자체보다 공연장 관계자 ‘접대’ 준비로 더 바쁘다. ‘때가 되면’ 크고 작은 공연장을 돌아다니며 선물을 돌리는 건 기본이고 술자리에 끌려나가 술값을 계산해주는 일도 허다하다. 대관이야 작품만 좋으면 저절로 되는 것 아닌가 싶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대관심사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극장과의 ‘좋은 관계’에 심혈을 기울인다.
2. 5년간 공연스태프로 일해온 K씨는 최근 두 달간 제대로 잠을 자본 적이 없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건 기본이고 철야작업도 이틀 걸러 한 번씩이다. ‘추가수당’ ‘야근수당’은 먼 나라 얘기. K씨는 “제작사가 ‘일은 시켜줄 테니 돈은 바라지 말라’더라”며 “이렇게라도 경력을 쌓아야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공연계가 ‘갑질문화’에 신음하고 있다. 대관기관인 공연장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제작사에 부당한 요구를 하고, 제작사는 배우나 스태프를 상대로 ‘열정페이’조차 바라기 힘든 대우를 한다. 극장은 공연 중인 제작사에 식사·술 접대를 관례처럼 요구하고 친밀한 관계에 있는 제작사에 대관을 몰아주기도 한다. 1회당 20석 이상의 극장유보석을 요구하거나 과도한 초대권을 달라는 경우도 있다. 공연계의 한 관계자는 “극장이 직접 투자를 한 작품의 경우 적자를 봐도 ‘원금을 보장해달라’고 한다. 한 번으로 끝나는 관계가 아니라 앞으로도 대관을 계속해야 할 처지라 어쩔 수 없이 들어줘야 한다”며 “공연계 전반에 갑을관계가 고착돼 있다”고 토로했다.
▲열정페이
‘열정’을 구실로 무급 또는 최저 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주 적은 월급을 주면서 취업준비생이나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형태를 비꼬는 말.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돈을 적게 줘도 된다는 관념’ ‘기업·기관·단체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경험이니 적은 월급(혹은 무급)을 받아도 불만 가지지 마라’는 태도가 깔려 있다.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구조로 치달은 사회 분위기에 대한 냉소가 담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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