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옷이 날개’라는 말에 빗대면서 “청바지는 질리지 않고, 입었을 때 정장과 달리 마음 자체가 여유로워진다”며 “특히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만큼은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고 청바지 예찬론을 폈다.
몇 년 전만해도 윤 상무처럼 회사 임원이 청바지를 입는 것을 문제 삼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심지어 회사 대표가 청바지 차림으로 공식 행사에 참석하는 일도 종종 볼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서울 도심에서 출근하는 남성 10명 중 6명은 정장이 아닌 캐주얼 복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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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소는 1997년부터 매년 5월 같은 장소에서 남성들의 출근 복장을 집계하고 있다.
캐주얼 비중은 2007년 30.9%에 불과했으나 6년 새 두 배가 됐다. 반면 정장 비중은 2007년 69.1%에서 계속 줄면서 조사 시작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나인경 삼성패션연구소 연구원은 “비즈니스 캐주얼 복장이 확산되면서 직장인들의 출근복도 간소화되는 추세”라며 “가벼운 재킷과 티셔츠를 선호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졌는데 이것이 청바지나 컬러가 있는 바지 확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다”고 분석했다.
신헌 롯데백화점 사장이 수시로 “백화점은 패션회사”라며 “패션을 다루는 사람은 옷차림부터 ‘패션 리더’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신 사장은 지난해 2월 취임 직후 ‘젊은 롯데’를 표방하며 내부 혁신의 바람을 주도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대표가 임원이나 고참간부들부터 솔선수범하라고 지시를 내린 이후 임직원들의 출퇴근 복장이 많이 달라졌다”며 “청바지는 기본”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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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식을 갖춰야 했던 골프장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종종 청바지를 입고 온 이들을 목격할 수 있게 된 것. 선이 살아나도록 몸매를 꽉 잡아주면서도 움직임이 편하다는 이유에서다.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는 양우식 차장(42)은 “만만치 않은 골프웨어 가격에 고민하다 청바지를 구입했다”면서 “체형도 보완해주고 흙먼지에도 쉽게 더러워지지 않아 골프웨어보다 선호하게 됐다”고 말했다.
청바지 상품군이 더욱 다양해진 것도 중년들이 청바지를 다시 찾게 된 원인 가운데 하나다. 몸에 꽉 끼는 스타일 때문에 배가 나오고 허리가 굵어진 일반 중년들이 청바지를 소화하기 힘들었다면 최근엔 중년들의 체형과 취향에 맞춘 진들이 쏟아지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리바이스 관계자는 “고객 요구에 따라 청바지 업체들 역시 처진 엉덩이, 굵은 허벅지를 잡아주는 디자인에 신축성·활동성·복원성이 뛰어난 소재들로 재무장 중”이라며 “3~4㎝ 다리가 길어보이는 체형 보정 설계로 전체적인 몸의 균형미를 살려주는 청바지도 출시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청바지를 새롭게 조명한 이는 ‘스티브잡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신제품 행사에 검정 터틀넥 셔츠와 리바이스 청바지, 뉴발란스 운동화 등 가장 편안하고 자유로운 차림으로 등장해 자신을 브랜딩했다.
중년 남성들의 청바지 바람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게 패션업계의 분석이다. 이랜드 측은 “40~50대 남성들 대부분도 청바지만 입어도 위에 입는 셔츠나 신발, 헤어스타일 등이 모두 달라져 결국 사고의 유연성을 갖게 한다”며 “중년 남성들의 패션에 대한 의식 전환은 보수적인 이미지를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도 롯데백화점 임직원들의 패션 변신이 회사 이미지와 조직문화를 얼마나 바꿔놓게 될지를 주목하는 분위기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롯데 특유의 보수적인 문화에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가 시작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40~50대 남성들 사이에 불고 있는 청바지 인기는 젊음과 자신감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투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LG패션(093050) 측 관계자는 “사회전반적으로 중년 남자들이 패션에 대한 관심과 청춘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면서 청바지를 찾는 고객들도 많아졌다”며 “자칫 권위적이고 딱딱해보일 수 있는 중년들을 겨냥해 젊어보이면서도 격식을 갖출 수 있는 청바지를 선보인 결과, 이 제품에 대한 수요가 매년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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