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벽두부터 곳곳에서 “물가 때문에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다. 달걀값 폭등은 조류인플루엔자(AI)라는 특수요인 때문이라 쳐도 각종 신선·가공식품 등의 생활물가와 공공요금까지 줄줄이 올라 서민들의 고통이 극심하다.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던 게 언제라고 이젠 ‘물가 폭탄’ 걱정이란 말인가.
“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는 탄식이 공연한 엄살이 아니다. 통계청이 어제 내놓은 가계수지 통계에 따르면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작년 3분기 월평균 소득은 444만 5000원으로 1년 전에 비해 0.65% 증가에 그쳤다. 반면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에 이른다. 이 정도만 해도 물가 안정세가 여전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속사정은 딴판이다.
무, 배추, 당근 등은 예년의 2배 수준으로 가격이 치솟았고 다른 신선식품도 수십%씩 오른 품목이 수두룩하다. 소주와 라면, 빙과류, 과자 등의 가공식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선발업체가 앞장서면 후발업체들이 뒤따르는 식으로 가격인상 대열에 합류한 결과다. 여기에 외식비와 영화 관람료를 비롯한 서비스요금도 덩달아 뛰고 대중교통, 상하수도, 쓰레기봉투 등의 공공요금과 주민세가 나란히 올랐다.
어느 정부에서건 물가 안정은 최우선 국정과제다. ‘최순실 사태’로 식물정부나 다름없다는 변명은 안 통한다. 어설픈 초동대응으로 AI를 사상 최악으로 키운 것도 그렇지만 생활물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물가지표의 착시현상에 속아 지자체들이 공공요금을 앞다퉈 올려도 중앙정부는 보고만 있거나 외려 부추긴다는 대목에선 기가 찰 뿐이다. 국제유가가 오름세로 돌아섰고 탄핵정국이 끝나면 곧바로 대선 정국으로 이어져 한동안 사회 혼란이 지속될 게 뻔한 터에 더 이상 손 놓고 있다간 ‘물가 태풍’을 맞기 십상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제 민생물가점검 당정회의에서 신선채소 공급을 확대하고 가공식품에 대한 민관합동 감시를 강화하겠다며 설 물가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그 정도론 어림없다. 이제라도 공공요금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고 비축물량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가능한 정책수단을 있는 대로 동원해 생활물가를 잡는 것만이 혹한에 처한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