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이 정부와 같은 기업은 공기업과 은행 정도다. 공기업은 ‘빚더미’, ‘방만 경영’으로 표현될 정도로 자체 신용도가 부실하지만, 영위 사업의 공공적 성격이 강해 정부의 지원 가능성이 높이 평가된다. 아무리 부실해도 철도나 전기, 수도를 없앨 수는 없으니 정부가 살릴 수밖에 없다.
국가 경제의 ‘대동맥’인 은행도 정부 지원 가능성이 크다. 은행이 부실화하면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린다. 예금보험공사도 예금자가 맡긴 돈의 5000만원까지만 보장해주기 때문에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뱅크런)가 발생하면 그 이상 예금한 사람들은 모두 돈을 잃게 된다. 엄청난 국가 경제의 후폭풍을 막기 위해 어떻게든 세금을 들여 살리거나 마땅한 인수자를 찾는 방향으로 정책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은행은 자체 신용도도 높다. 신용등급이 우량한 개인, 기업 고객에게만 대출을 해주고 그 비중도 담보대출이나 보증부대출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균열은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SC은행)과 한국씨티은행 등 외국계 은행에서 시작됐다.
외국계 은행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국내 은행을 인수하면서 시장에 진입했다. 선진 금융기업을 우리나라에 이식하겠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대형화를 이뤄낸 지방은행만큼의 경쟁력도 갖추지 못한 채 점포를 줄이고 비은행 부문은 사업을 접고 있다.
SC은행은 지난 2010년 12월말 406개에 달하던 영업점이 작년 말 282개로 줄었고 씨티은행도 2011년말 221개에서 작년 말 134개로 감소했다. 외국계 은행들은 이런 추세를 대면 채널을 줄이고 비대면 채널을 늘려 비용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설명한다. 변변한 기업금융 역량도 갖추지 못 한 외국계 은행이 국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주 수익원은 주택담보대출과 가계신용대출이었다. 두 외국계 은행을 두고 제1금융권도 제2금융권도 아닌 ‘1.5 금융권’이란 비아냥 섞인 별칭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규모의 경제가 핵심 경쟁력인 은행업 특성상 SC은행과 씨티은행의 영업기반 축소 전략은 중장기적인 시장 지위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게 신평사들의 분석이다.
김정현 한기평 연구원은 “SC은행은 금융위기 직후 저축은행과 캐피탈, 증권 등 비은행 사업 부문을 모두 접었다”며 “최근 SC그룹의 경영진 교체가 경영 전략의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어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21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s by Edaily)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21회 SRE는 2015년 5월1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문의: stoc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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