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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9년 차 배우 김(33)씨는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지난 3개월간 뮤지컬 무대에 서면서 번 돈은 고작 300여만원. 배우로 활동하면서 김씨가 벌어들인 연 평균수입은 900만원이 채 안 된다. 김씨는 결혼은커녕 연애도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생활비는 공연이 없을 때 바짝 벌어 충당하는 식이다. 새벽 배달과 편의점·식당 점원은 기본이고, 이벤트 도우미나 이삿짐센터, 발레파킹, 공사판 막일까지 안 해본 것이 없다. 김씨는 “연극·뮤지컬 가리지 않고 1년에 보통 3개 작품에 출연하는데 연습기간까지 포함해 7개월 정도 연기활동을 하는 셈이지만 이걸로 먹고살기는 힘들다”고 털어놨다.
2년째 공연스태프로 경력을 쌓고 있는 박이슬(29) 씨도 공연이 없는 날 새벽이면 편의점으로 출근한다. 그나마 무대에 서는 중엔 새벽연습이 없어 생활비를 벌 수 있다. 하지만 “공연을 올리고도 수익이 나지 않을 땐 임금을 못 받는 일이 허다하다”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씁쓸해했다.
국내에 수백개의 공연제작사와 극단이 있지만 임금 지급방식이나 액수가 천차만별이고 체계적인 기준이 없다는 게 공연업계 전언. 특성상 도제식 교육이 많아 무계약·구두계약이 잦고 일한 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일이 관행처럼 이어진다. 스타배우의 출연료는 수천만원인데 반해, 단역 혹은 보조출연자(앙상블)의 임금은 수십만원에 불과하고 연습기간엔 이마저도 없다. 나이·경력·결혼유무·유명세를 감안해 임금을 책정한다고 하지만 결국 제작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고용환경도 불안하다. 최근 이데일리가 입수한 G극장, H공연제작사 등 총 10건의 ‘배우출연계약서’를 분석한 결과, 일부는 노예계약과 다름없었다. ‘제작사 및 연출부의 결정에 따라 추가연습이 있을 수 있지만 추가보수는 없다’거나 ‘제작사에 의해 요청되는 다중의 역할 이행에 동의해야 하되 추가보수 없이 일한다’ ‘제작발표회·쇼케이스·이벤트 행사 출연을 요청할 경우 응해야 하며 별도의 출연료를 요구할 수 없다’고 명시해 놨다. 또 연습시간을 정확히 언급하지 않아 스타배우나 극장의 편의대로 스케줄을 짜기 일쑤고, 이외의 다른 활동을 전혀 할 수 없도록 해놨다. 헤어스타일이나 염색 등도 제작사가 요구하는 대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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