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甲질③] "너무 배고파"…제작사횡포에 우는 배우·스태프

#1 노예계약서 쓰고
스케줄 제작사 마음대로
임금 지급방식 다 다르고 기준 없어
돈 안주고 고의로 파업도
#2 투잡해도 겨우 밥벌이
9년차 배우, 연수입 900만원도 안돼
편의점·막일 생활비 충당
  • 등록 2015-04-03 오전 6:16:00

    수정 2015-04-03 오전 9:10:34

그래픽=문승옹 기자 symoon@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9년 차 배우 김(33)씨는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지난 3개월간 뮤지컬 무대에 서면서 번 돈은 고작 300여만원. 배우로 활동하면서 김씨가 벌어들인 연 평균수입은 900만원이 채 안 된다. 김씨는 결혼은커녕 연애도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생활비는 공연이 없을 때 바짝 벌어 충당하는 식이다. 새벽 배달과 편의점·식당 점원은 기본이고, 이벤트 도우미나 이삿짐센터, 발레파킹, 공사판 막일까지 안 해본 것이 없다. 김씨는 “연극·뮤지컬 가리지 않고 1년에 보통 3개 작품에 출연하는데 연습기간까지 포함해 7개월 정도 연기활동을 하는 셈이지만 이걸로 먹고살기는 힘들다”고 털어놨다.

2년째 공연스태프로 경력을 쌓고 있는 박이슬(29) 씨도 공연이 없는 날 새벽이면 편의점으로 출근한다. 그나마 무대에 서는 중엔 새벽연습이 없어 생활비를 벌 수 있다. 하지만 “공연을 올리고도 수익이 나지 않을 땐 임금을 못 받는 일이 허다하다”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씁쓸해했다.

비단 김씨나 박씨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문화재단 서울연극센터가 발표한 ‘2013 대학로 연극 실태조사’를 보면 연극종사자의 69%가 공연 외 다른 경제활동을 한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30대 미혼 남자배우’는 월평균 114만원을 벌었고, 이 중 연극과 관련한 수입은 77만원에 불과했다.

국내에 수백개의 공연제작사와 극단이 있지만 임금 지급방식이나 액수가 천차만별이고 체계적인 기준이 없다는 게 공연업계 전언. 특성상 도제식 교육이 많아 무계약·구두계약이 잦고 일한 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일이 관행처럼 이어진다. 스타배우의 출연료는 수천만원인데 반해, 단역 혹은 보조출연자(앙상블)의 임금은 수십만원에 불과하고 연습기간엔 이마저도 없다. 나이·경력·결혼유무·유명세를 감안해 임금을 책정한다고 하지만 결국 제작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고용환경도 불안하다. 최근 이데일리가 입수한 G극장, H공연제작사 등 총 10건의 ‘배우출연계약서’를 분석한 결과, 일부는 노예계약과 다름없었다. ‘제작사 및 연출부의 결정에 따라 추가연습이 있을 수 있지만 추가보수는 없다’거나 ‘제작사에 의해 요청되는 다중의 역할 이행에 동의해야 하되 추가보수 없이 일한다’ ‘제작발표회·쇼케이스·이벤트 행사 출연을 요청할 경우 응해야 하며 별도의 출연료를 요구할 수 없다’고 명시해 놨다. 또 연습시간을 정확히 언급하지 않아 스타배우나 극장의 편의대로 스케줄을 짜기 일쑤고, 이외의 다른 활동을 전혀 할 수 없도록 해놨다. 헤어스타일이나 염색 등도 제작사가 요구하는 대로 바꿔야 한다.

공연계의 한 관계자는 “‘갑을’로 명시돼 있던 계약서가 2~3년 전후로 ‘제작자·공연자’로 바뀌었을 뿐 임금체납이 만연하고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받는 현실은 여전하다”며 “악덕 제작자 중에는 고의로 파업신고를 해 임금지급 의무를 면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공연계를 떠나지 않는 이상 언젠가 다시 마주쳐야 할 관계라서 대응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한마디로 공연제작사와 배우·스태프는 갑을관계다. 결과적으로 지는 게임”이라고 말했다 .

▶ 관련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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