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 DLS 대란]중위험이라더니 원금 몽땅 날릴 판…소비자 '분통'

수익 좌우하는 금리변동 체크 없이
'英·獨 국채' 표현만 듣고 투자하기도
은행들 국채금리 급락 몰랐다지만
상품 판매 때 이미 하락세 시작돼
  • 등록 2019-08-13 오전 6:00:00

    수정 2019-08-13 오전 6:00:00

(그래픽=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김정남 박종오 기자] 제2의 키코(KIKO) 사태로 번질까. 일부 시중은행들이 판매한 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DLS)의 수천억원대 손실 우려가 커지자 10년 전 환율과 연계한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중소기업들이 피해를 봤던 키코 사태의 ‘데자뷰’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 약자’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한 금융권 고위인사의 지적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그는 “금리·통화의 변동률은 한 나라의 거시경제 지표인 국내총생산(GDP) 등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며 “시중은행이 비(非)이자이익을 확대하려면 결국 파생상품으로 많이 가게 되는데, 특히나 요즘처럼 변동성이 커질수록 은행권은 본연의 자금중개 중심의 은행업 업무에 더 무게를 두되 파생상품 운용은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인사는 “전례를 보면 이런 사태의 피해는 금융을 잘 모르는 ‘개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도 지적했다.

무늬만 ‘중위험·중수익’...알고보니 원금손실 높은 ‘고위험’ 상품

원금을 몽땅 날릴 우려까지 나오는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DLS에서 눈 여겨볼 건 하나같이 선진국 국채 금리의 변동률에 투자했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의 경우 독일 국채(분트채) 10년물 금리에, KEB하나은행의 경우 미국·영국 CMS(이자율 스와프) 금리에 각각 연동돼 있다. DLS의 특징은 기초자산의 안정성과는 무관하게 기초자산의 가격 흐름에 따라 손익(수익률)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일부 투자자들이 “선진국 국채에 투자하는 것과 국채 금리에 투자하는 것의 차이를 은행으로부터 제대로 설명 듣지 못했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은행이 올해 3월부터 판매한 한 분트채 금리 연계 DLS 상품설명서를 보면 만기평가일에 만기평가금리가 행사가격(-0.20%) 미만일 때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다고 돼 있다. 행사가격 미만으로 0.10%포인트씩 떨어질 경우 원금의 20%씩 손실이 나는, 즉 1억원을 투자했다면 -0.30%에서는 8000만원 밖에 건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0.70% 이하로 내릴 경우 원금 전액을 잃는 구조다. 이렇게 석달간 판매된 금액이 1250억원을 넘는다.

불완전판매 여부의 쟁점은 투자자도 이를 제대로 알았는지다. 소송을 준비 중인 법무법인 한누리의 송성현 변호사는 “이들 상품은 대체로 안정적인 것으로 설명돼 판매됐던 것으로 보인다”며 “유럽 선진국인 ’독일’ ‘영국’이라는 표현과 ‘금리’라는 표현이 있어 예금 상품인 것처럼 오인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적지 않은 투자자들은 “무늬만 중위험·중수익이었지, 알고보니 고위험·중수익 상품이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분트채 10년물 금리가 올 3월 말 당시 이미 마이너스(-)에 진입했다는 점도 분쟁의 소지가 있다. 5월 말에는 -0.20%에 근접했다. 우리은행 인사들은 “금리가 이렇게 급락할 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올해 1월 초 0.2% 중반대에서 이미 0.5%포인트 가까이 떨어진 와중에 DLS 판매가 이뤄졌다는 점은 논란이 될 수 있다.

KEB하나은행의 경우도 비슷하다. DLS를 한창 팔았던 올해 초께 영국 국채(길트채) 10년물 금리는 1.1~1.2%대였다. 지난해 10월 한때 1.6%에 육박했던 것과 비교하면 하향 국면이 뚜렷했다. 미국 국채 금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4000억원 가까이 판매했다. KEB하나은행의 경우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규모는 수백억원 규모로 작지만 이는 곧 내년 이후로는 분쟁이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또다른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이번 DLS 사태는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며 “각 은행이 비이자이익을 확대하는데 총력을 기울인 만큼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록 드러나지 않은 투자 손실은 더 커질 수 있다”고 했다.

뒤늦게 칼 빼든 금융 감독당국

이에 금융 감독당국도 칼을 빼 들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주 원승연 부원장 지시로 은행·금융 투자·금융 소비자 보호 부문 실무자들이 긴급 회의를 하고 은행·증권사의 DLS 판매 현황 파악에 착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권 전반을 대상으로 관련 상품 취급 내역 등을 실태 조사하는 중”이라며 “최근 문제가 된 금리 연계형 상품의 판매 현황을 우선 파악하고 향후 금융사의 불완전 판매 여부 등을 검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국이 관리·감독의 사각지대를 방치하다가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금감원의 조사 결과, 파생결합증권을 판매하는 은행의 투자자 보호가 증권사보다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 대상 12개 은행 중 KB국민은행과 한국씨티은행, 부산은행을 제외한 9개 은행이 무더기로 ‘미흡’ 또는 ‘저조’ 등급을 받았다.

금감원은 당시 “은행의 경우 2016~2017년 2년간 DLS 미스터리 쇼핑(금감원이 위탁한 조사원이 고객으로 가장해 금융회사의 상품 판매 과정을 평가하는 것)을 하지 않아 은행 직원이 투자자 보호 제도를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약 이번 대규모 DLS 손실 사태가 은행의 불완전 판매 때문이라고 결론 난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은 이미 잠재돼 있었다는 얘기다.

특히 노후 자산을 굴릴 목적으로 목돈을 넣어둔 고령층이 많아 당국의 이번 조사가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금감원에 따르면 60대 이상 고령층의 파생결합증권 투자액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19조7000억원으로 전체 개인 투자자 투자액의 42%에 달한다. 반면 지난해 미스터리 쇼핑에서 은행은 고령 투자자 보호가 특히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불완전 판매와 전쟁을 선언했던 윤석헌 금감원장도 머쓱하게 됐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중 4개 증권사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 판매 여부를 점검했지만 특별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판매 과정에서의 개별 녹취자료 등을 일일이 들여다봤지만 불완전판매는 애초 입증이 굉장히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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