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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는 “여성 이슈에 대해 사실 할 말은 많지만 논쟁거리를 만드는 게 싫다는 의미로 ‘아이엠 그루트’라는 표현을 쓴다”고 했다.
미투·페미니즘 등 젠더 이슈에 입닫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온라인 기사나 글을 보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아이엠그루트’ 같은 무의미한 댓글을 달거나 아예 젠더 이슈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로 일관하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여성 이슈에 대한 남녀간 논쟁이 과열되면서 생기는 과잉 방어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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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포털사이트 네이버 카페 디젤매니아(회원수 약 80만명)에서 8월 한 달동안 ‘아이엠 그루트’라는 댓글이 달린 게시물은 182개다. 그 중 약72%에 해당하는 132개 게시물이 젠더 이슈 관련 글이다. ‘불법촬영물 편파 수사 규탄 시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미투 사건 등과 관련된 게시물들이 대표적이다.
직장 동료, 친구들과의 대화할 때도 젠더이슈가 등장하면 입을 닫는다.
한씨는 “집회의 운영 방식의 비민주성과 과도한 남성 혐오표현을 지적하자 여성 동료가 ‘여성들의 고충을 모르기 때문’이라며 비난해 당황했다”며 “여성과 남성 사이에 젠더이슈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크다는 점을 안 뒤부터는 이런 문제로는 여자들과 대화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직장인 옥모(29·남)씨도 최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을 두고 여자친구와 언쟁을 벌여 여태 사이가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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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페미니즘과 미투 등 여성 이슈에 대한 남녀간 논쟁이 과열되면서 논쟁을 피하려는 남성들의 과잉방어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김종갑 건국대 몸문화 연구소 소장은 “미투를 계기로 여성 이슈가 폭발적으로 사회에 퍼지면서 비난을 두려워하는 남성들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아예 논쟁을 회피해버리는 경우가 있다”며 “여성 관련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밟힐 때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걱정이 반영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성들이 젠더 이슈에 대한 논쟁을 회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남성들의 침묵은 일종의 방관자적인 성향을 띈다”며 “페미니즘과 미투 등 여성과 관련된 이슈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배움이 필요하다”며 “이 것이 성평등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남성들의 침묵은 사회 이슈를 ‘여성들만의 의제’로 축소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