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기료 누진제 개편 시늉만으론 안 된다

  • 등록 2016-10-07 오전 6:00:00

    수정 2016-10-07 오전 6:00:00

전기요금 누진제 집단소송에서 문제를 제기한 시민들이 패소한 것은 꽤 의아하다. 한국전력 스스로 누진제 개편의 필요성을 인정한 마당에 법원이 한전 손을 들어준 꼴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어제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전기공급 약관이 약관규제법상 무효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측 주장을 기각했다. 시민 17명이 2014년 8월 전기요금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한 지 2년 2개월 만의 판결이다.

이번 판결은 누진제의 위법성 여부에 대한 법원의 첫 판단으로 전국에서 8500여명이 참여한 9건의 다른 재판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그러나 이들 소송의 궁극적 목표가 돈 몇푼이 아니라 누진제 개편과 요금 인하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민들의 승리는 이미 예정돼 있는 셈이다. 지난 여름 ‘누진제 폭탄’으로 서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자 부랴부랴 꾸려진 ‘전기요금 당정 태스크포스’가 조만간 개선안을 내놓기로 했기 때문이다.

태스크포스 위원인 조환익 한전 사장은 그제 국회 국정감사에서 ‘슈퍼 유저’(과다 사용자) 때문에 누진제 폐지는 힘들다면서도 “6단계 구간을 대폭 줄이고 구간 간의 급격한 차이는 개선해야 한다”고 인정했다. 최고 11.7배나 차이 나는 현행 누진제는 전형적인 독점의 폐해로 미국(2단계 1.1배), 일본(3단계 1.4배), 대만(5단계 2.4배) 등과 비교해도 너무 격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사진=뉴시스)
지난 8월 300만 가구의 전기요금이 6월보다 2배 이상 늘었고, 5~6배까지 폭등한 가구도 적지 않다. 누진제가 도입된 1974년에는 에어컨이 사치품이었을지 몰라도 요즘 에어컨 좀 썼다고 ‘요금폭탄’을 퍼붓는 누진제는 납득하기 어렵다. 기껏 대책이라고 제시된 “서민들은 하루 두세 시간만 에어컨을 켜라”는 탁상행정도 마찬가지다. 그러고도 지난해 1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린 한전은 온 국민이 폭염으로 시달리는 동안 벌어들인 떼돈으로 지난달 직원들에게 평균 1000만원의 상여금을 퍼주는 돈잔치를 벌여 빈축을 샀다.

어떤 이유에서건 서민을 울리는 누진제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정부와 한전은 이번에 제대로 된 개선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았다간 전기사업 민영화, 원가 공개와 원가연동제 실시 등의 대수술이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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