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에서도 2년 동안 공부만 했다. 큰 형님뻘 동기는 변호사가 됐고, 수석으로 졸업한 동기는 판사가 됐다. 나는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검사가 됐다.
학창시절 본 TV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박상원이 연기한 검사 강우석은 내 인생의 롤모델이다. 외부의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을 지켜낸 강직한 검사.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슈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몸매 좋은 검사는 현실엔 없다. 수사를 시작하면 새벽별 보며 퇴근하는 게 일상이다. 중요 참고인이나 피의자를 소환하면 기본이 12시간 조사다. 오전에 불러도 새벽녘에나 심문이 끝난다. 참고인은 조사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지만, 검사는 조사 내용을 복기한다. 책상 위에 쌓여가는 각종 조서와 사실관계 서류를 엮어 놓은 서류 뭉치는 들여다볼 시간조차 부족하다. 운동할 시간은 없고 스트레스는 폭탄주로 풀다 보니 생전 없던 아랫배가 나왔다.
초임 검사 월급은 276만원. 첫 월급을 받았을 때는 나쁘지 않다 싶었는데(사법연수생은 월 174만원을 받는다.) 내가 ‘청빈한’ 삶에 너무 익숙했던 모양이다.
사법연수원 성적이 최상위권이었던 한 동기는 판·검사를 지원하는 대신 대형로펌으로 갔다.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다. 로펌에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는 것도 있지만, 전관예우가 사라진 영향 또한 크다고 한다. 과거 선배들은 멋지게 검사 생활하다 수틀리면 나가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해 굵직한 사건을 맡았다. 나도 지검에서 같이 근무했던 선배가 피고인 측 변호사로 나와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요즘엔 검찰 출신 변호사라는 이유로 사건을 맡기는 의뢰인이 많지 않다고 한다. 이 때문에 비빌 언덕 하나 없이 개업하는 것보다는 현직에서 버티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검사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후배 지청장 밑에서 묵묵히 차장검사로 일하는 선배도 있다.
이런 악조건에도 검사일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지검서 근무할 때 선배 검사는 책상 서랍에 선배가 맡았던 사건 피해자가 보낸 편지를 넣어놓고 꺼내보곤 했다.
“인생에서 가장 억울했던 순간 검사님을 만난 덕분에 제2의 인생을 얻었다”는 짧은 감사 글이 담긴 편지다. 검사는 나쁜 놈을 잡는 게 일이다. 나쁜 놈은 나를 욕하지만 나쁜 놈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한다.
작은 실마리로부터 숨겨진 사실을 밝혀내고, 진실을 찾아내 합당한 죗값을 치르도록 노력하다 보면 내 아이가 더 안전한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오늘도 나는 사무실에서 밤을 새운다. 나는 검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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