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 해리포터는 영국 영화일까, 미국 영화일까?

  • 등록 2014-04-22 오전 8:12:07

    수정 2014-04-22 오전 8:12:07

[이동기 서울대 교수·한국중견기업학회장] 최근 2014년 아카데미상 후보작이 발표되자 미국 못지않게 영국의 영화계도 술렁거렸다. 영국이 자랑하는 스크린의 총아 스티브 맥퀸 감독의 ‘노예 12년’이 작품상, 감독상 등 9개 부문에서 후보로 선정됐고, 런던 근교의 파인우드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그래비티’가 10개 부문에서 후보작 명단에 올랐기 때문. 하지만, 여기에는 자조(自嘲) 또한 섞여 있다. 자국 인재가 미국 영화계의 ‘비싼 용병’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는 현실에 대한 씁쓸함이 깔려있는 것.

해리포터, 007시리즈를 비롯해 세기적인 블록버스터들의 원천이 돼온 영국 영화산업. 창조경제의 모범으로 손꼽히는 이 나라의 영화계에 어째서 위기의식과 냉소감이 엿보이는 것일까? 그건 ‘영국산’이라 불리는 작품들의 ‘국적 가리기’를 둘러싼 회의론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4억부 이상의 경이적인 판매 부수를 기록한 판타지소설 해리포터의 원작자는 영국의 J.K. 롤링이다. 이 책의 영화 버전 역시 영국에서 촬영됐고, 출연 배우들도 대부분 영국 국적이다.

하지만 ‘사업의 논리’를 보면 엄연히 미국 영화다. 소설이 완전히 뜨기도 전에 초기 작품의 저작권을 저렴하게 사들인 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빚어낸 투자와 배급의 주체는 미국의 메이저 스튜디오인 워너브라더스이기 때문이다. 영국 입장에서 ‘콘텐츠의 원천’이라고 자위하면서도 ‘죽 쒀서 남 준다’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는 이유다.

이 대목에서 천만 관객 동원작을 거듭 양산해내며 르네상스를 누리고 있는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를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다. 콘텐츠 경쟁력은 강화되고 있지만 1인당 연간 4.2편의 영화관람 편수에 도달한 한국의 내수시장은 포화 상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재 지구촌의 영화시장은 배급과 투자, 제작을 넘나드는 글로벌 스튜디오들이 장악하고 있는 ‘승자 독식형’ 생태계의 표본이다.

여기에 중국의 공룡기업 완다그룹이 미국 2위 멀티플렉스 업체를 인수, 세계 1위 극장사업자로 등극하면서 헐리우드를 따라잡겠다는 ‘찰리우드의 야망’을 불태우고 있다. 완다그룹은 제작, 투자 ,배급을 통해 중국 콘텐츠에 투자하면서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 극장체인을 인수하는 글로벌 수직계열화를 맹렬히 추진, ‘콘텐츠와 배급력’의 양대 무기를 동시에 갖춤으로써 중국을 문화강국의 대열로 조기 진입시키는 첨병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창의적 재능이 넘실대는 한국 영화계에 해리 포터처럼 잠재력이 막강한 콘텐츠가 탄생한다면, 우리는 과연 힘겨운 투자·배급 싸움에서 이기고, 게임, 테마파크 등 복합적인 수익창출의 고리까지 제대로 꿸 수 있을까? 해리 포터의 예에 비춰볼 때, 방심하다가는 강력한 글로벌 기업에 의해 ‘국적’을 잃게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2012년 기준 영화부문 콘텐츠 수출은 총 3486만 달러로, 방송의 1억 6800만 달러, 케이팝의 1억 8400만 달러에 비해 적다. 아직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최근 CJ가 투자·배급한 ‘설국열차’가 개봉 전 167개국에 선판매를 기록했지만 이런 사례는 극소수에 그치고 있다. 수직계열화라는 잣대로 영화산업의 축소를 불러일으키고 글로벌 경쟁력 구축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분리 정책보다는 대기업과 중소제작사가 상생하는 건전한 생태계 조성을 통해 부작용을 보완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K-Film을 확산할 수 있도록 산업화를 촉진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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