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절 신하였던 허조(許稠)와 고약해(高若海)가 대표적으로 왕에게 직언하던 신하들이다. 고약해는 간언을 서슴지 않았고 가끔 그 태도가 도를 넘어 군신관계를 잊은 듯한 어투와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은 상당히 강직했고 신념과 원칙에 충실한 신하로 꼽힌다. 그러나 세종은 이러한 신하들의 말길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말길이 막히는 것을 두려워했다. 말길이 막히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잘 알았기에 성군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일국의 지도자든 작은 기업의 경영자든 크고 작은 결정들을 해야한다. 조직이 크든 작든 책임을 맡은 자는 많은 결정을 내려야하고 그 결정은 결과로 나타나 조직을 성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한다. 그래서 결정권자의 결정들은 조직의 존망을 가르고 성장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이런 연유로 경영자의 결정과정을 살펴보면 그 기업의 미래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언젠가 어떤 기업의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젠장! 왜 나만 만나면 다들 훈계질이야. 과연 나를 도와줄 놈은 누구야?” 난 이 말을 들으며 고개를 가로지었다. 누가 자기를 도와주고 있는지를 모르다니. 충언과 잔소리도 구분 못하는 사람이 그 조직의 우두머리로 있다니 한숨이 절로났다.
진짜 충직한 보좌는 결정권자가 못 보는 부분이 있는지를 찾아 그걸 보게 해주는 것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생각의 음영지역에서 생기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정작 문제는 생각의 음영지역에서 생기는 법이다. 그래서 군의 매복작전도 적의 눈에 띄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매복작전에 걸려 전멸하는 군대는 뭔가를 못 본 것이 그 원인이다.
배달의민족을 만든 김봉진 의장은 회사경영에 대해 여러 사람에게 의견을 묻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훌륭한 경영을 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못 본 부분을 대신 봐주는 파수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가장 싫은 건 미처 못본 부분 때문에 조직이 타격을 입는 경우예요. 보고 나서도 실패를 한다면 깨닫고 빨리 고치면 더 좋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못 보는 부분이 없는지 묻고 또 묻습니다.” 큰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망가지는 건 대부분 못 본 부분 때문이다. 눈과 귀가 막히고 닫힌 조직에서 현명한 결정이 나오기는 매우 어렵다. 그저 높은 분의 감정대로 그가 느끼는 느낌대로 운영되는 조직이 오래 못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는 작은 조직도 그렇고 심지어 국가도 그렇다. 위험을 알고도 윗사람에게 알리지 않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간신(奸臣)이 많은 조직은 이미 망하고 있는 것이다. 간(諫)하게 하라. 말하게 하라. 고하게 하라. 그것이 바로 미래를 여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