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자인 정채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는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사법제도에서의 AI의 역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인간 판사의 역할 자체를 대체할 수 있는 ‘AI 판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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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시스템에 AI를 가미하려는 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최근엔 주로 재판 결과에 대한 불신이 ‘AI 판사를 도입하라’는 식의 요구로 반영되고 있다. 지난해 연말 챗GPT의 엄청난 열풍과 함께 생성형 AI 시대에 접어들며 이 같은 흐름은 더욱 거세진 모양새다. 하지만, 생성형 AI의 할루시네이션(환각현상)을 고려할 때 이를 개인의 신상과 직결되는 판결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법조인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뉴욕주 변호사이기도 한 정 교수는 카이스트(KAIST) 재직 시절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AlphaGo) 열풍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AI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이후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에서 초빙연구위원 자격으로 ‘사법절차 및 사법서비스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도입 및 수용을 위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AI, 재량 영역·규범적 가치 평가 불가능”
정 교수는 “AI는 본질적으로 재량이 필요한 영역과 규범적 가치 평가가 이뤄지는 업무를 수행하지 못한다”면서 “사법 판단의 영역에서 AI가 제한적으로 보조적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결국 최종 결정은 오롯이 판사가 해야 한다”고 AI의 역할에 명확히 선을 그었다.
현재 행정기본법상 ‘자동적 처분’ 조항을 통해 AI 기술을 포함한 완전 자동화된 시스템을 통한 행정청의 처분이 가능해진 상황이다. 일각에선 향후 법원도 이와 유사한 아주 경미한 사건에만 AI 판단을 통한 판결이나 결정이 일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다.
정 교수는 이와 관련해 “헌법상 재판청구권에 대한 소극적 요건을 고려할 때, 향후 이의제기가 가능하고 판사에 의해 종국적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판사의 재량 판단이 아닌 사법절차의 효율성을 재고하는 방향성에서 AI 활용은 점진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객관적·정량적 분석이 필요한 보석이나 양형 판단 등의 단계에서 재범 가능성이나 위험도를 평가에도 활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같이 재판의 비본질적 부분에 대한 판사들의 업무경감을 덜어줌으로써 최근 화두인 신속한 재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이다.
민사서 AI 활용 가능성 더 많아…해외도 사례 다수
정 교수는 특히 ‘나홀로 소송’ 지원 등에서 AI의 역할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전자소송 도입 후 나홀로 소송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비법률가들에게 소송은 여전히 진입 장벽이 높다.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민사소송의 특성상 권리구제를 받기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정 교수는 AI가 이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홀로 소송’을 위한 AI 플랫폼이 구축되면 소송 당사자들에게 관련 절차를 안내하고, 문서 작성·제출을 편리하게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외국에선 이미 사법절차에서 AI가 활용되는 사례가 많다. 정 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일부 주에서 소액 사건, 교통법규 위반 사건 등에 대해 ‘법원 온라인 분쟁절차(ODR)’ 방식을, 호주에선 이혼 시 재산분할 자문을 수행하는 AI 프로그램 ‘스플리트 업(Split-Up)’을 도입했다. 영국과 프랑스 등도 사법시스템 일부에 AI 기술을 접목했다.
정 교수는 법원 외에도 수사와 변호사업계 등 사법시스템 전반에 AI 기술이 접목될 여지는 매우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조의 다양한 영역에 AI가 도입되면 결국 일반 시민의 사법 접근성은 매우 높아질 수 있다”며 “이 같은 선진화된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사법불신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