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건희 회장 별세, 제2ㆍ제3의 거목이 더 나와야 한다

  • 등록 2020-10-26 오전 6:00:00

    수정 2020-10-26 오전 6:00:00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1987년 12월 1일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뒤를 이어 회장에 오른 고인은 33년간 그룹을 이끌며 삼성전자를 세계적 초일류기업으로 키우는 등 삼성그룹과 한국 경제의 비약적 발전을 선도해 온 거목이었다.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한 후 병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글로벌 삼성을 대표하는 정신적 지주였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회장 취임 당시 10조원 안팎이었던 그룹 매출을 이제는 삼성전자 단일 회사만으로도 연간 200조원대를 올릴 만큼 눈부시게 키운 고인의 경영 능력에는 어떠한 찬사를 붙여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승부사적 기질과 앞을 내다보는 비전, 그리고 탄탄한 논리와 해박한 지식에다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위기감이 그로 하여금 오늘의 삼성을 있게 했다는 게 그룹 안팎의 일치된 평가다. 자연 그가 남긴 일화와 말들에는 경쟁 기업은 물론 정부와 정치권이 새겨들어야 할 것도 적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보자. 나부터 변해야 한다”(1993년)“우리나라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1995년)“200~300년 전에는 10만~20만명이 군주와 왕족을 먹여 살렸지만 21세기는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 명을 먹여 살린다”(2002년)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2010년)는 고인의 말들에는 미증유의 혼돈에 빠진 한국 경제와 기업들이 명심해야 할 활로 찾기의 나침반이 담겨 있는 듯 하다. 정부와 정치권에는 변하지 않는 언중유골의 메시지이다.

고인에게도 과(過)가 없는 건 아니다. 자동차 사업은 실패했고 무노조, 비노조 경영원칙은 시민·노동계의 끊임없는 비판 대상이 됐다. 정경유착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한나라당 불법 정치자금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하지만 주목하고 싶은 건 그의 안목과 불굴의 도전정신이다. 나라 경제의 거의 모든 지표에 경고등이 켜지고 기업들은 불안에 떨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제2, 제3의 이건희 같은 거목이 우리에겐 절실하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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