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소리와 기도 소리로 매캐한 오래된 호텔에서의 며칠 밤은 고통이었다. 도마뱀이 기어 다니고 춥고 녹물이 나왔다. 초대 시인에게 제공된 고풍의 호텔이어서 감사히 머물렀지만 일정이 끝나자마자 나와 몇몇 시인은 바로 옆 샹그릴라 호텔로 짐을 옮겼다.”(‘시의 나라에는 매혹의 불꽃들이 산다’)
일본 소설 번역가인 권남희 번역가와 다수의 국내외 문학상을 수상한 문정희 시인이 작가로 돌아왔다. 권 번역가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상상출판)를, 문 시인은 번뜩이는 여행기를 담은 산문집 ‘시의 나라에는 매혹의 불꽃들이 산다’(민음사)를 각각 내놨다.
‘번역하는 아줌마’의 일상
특히 하루키의 많은 소설을 번역했던 그는 2016년 하루키가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떠오르자 덩달아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느라 진땀을 흘렸다고 한다. 확정되기도 전에 이 정도인데 실제로 그가 받으면 얼마나 연락이 올까 싶어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개뿔도 아는게 없습니다”라고 자동응답을 바꿔 놓을까도 생각했단다.
매혹적인 ‘시의 나라’
이번 산문집은 시인의 왕성한 활동을 풀어놓은 여행기이자, 매혹의 장소를 옮겨 적은 기록이다. 프랑스 낭트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루마니아의 오래된 도시 쿠르테아데아르제슈, 홍콩과 난징, 산티아고와 킹스턴까지 망라했다.
문 시인은 일찍이 뉴욕 유학 생활을 경험했고, 세계 곳곳의 문학 행사와 시상식에 여러번 초청된 바 있다. 베네치아에서 목격한 명품 패션의 허무, 파리의 동굴카페에서 맛본 황홀 등을 특유의 시적인 감각으로 풀어낸다.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아르빌성에선 돌 하나 풀 하나에도 신비함이 풍겨 나왔다고 한다. 시인 로르카가 오래 머문 방을 구경할 때는 헤밍웨이가 머문 호텔을 확인할 때와는 또 다른 은밀한 감동이 밀려오더라고 전한다. 각지를 여행하며 혹은 누군가와 우정을 나누며 영감을 얻어 창작한 시 19편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