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비틀어 2조 에너지펀드? 산업부 관치 논란

"한전이 2조 조성" 일방적 업무보고
한전 "정책펀드 확정안 아냐" 당혹
부채난 심각한 자회사도 부담 난색
  • 등록 2016-01-21 오전 7:00:00

    수정 2016-01-21 오전 7:00:00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산업통상자원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해당 공기업과 구체적인 논의 없이 수조원 규모의 신산업 육성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 주도로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힌 산업부의 청사진이 실제로는 부채난이 심각한 공기업을 압박해 후유증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산업부는 지난 1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신산업 창출과 주력산업 고도화 지원 취지로 산업부·중소기업청·한국전력(015760)공사가 4조5000억원 규모의 정책 펀드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정책 펀드에는 한전이 에너지 분야 신산업 육성을 위해 2조원 규모의 신규 펀드를 조성할 것이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신기후변화 협약, 한전의 흑자 여건 등을 고려해 이 같은 펀드를 조성, 에너지 신산업 벤처기업 등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게 산업부의 복안이다.

그러나 한전은 이 같은 산업부 발표에 당혹스런 분위기다. 당초 한전의 올해 업무계획에는 2조원 규모의 신사업 펀드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한전은 펀드 2조원을 홀로 부담해 조성할 계획도 없다는 입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펀드 조성 시기, 방법, 내용이 확정된 사항이 아니다”며 “펀드 조성 시 한전뿐 아니라 한전 자회사, 발전사들과 함께 공동으로 조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펀드를 신규로 조성할 경우 산업부 산하 공기업들이 갹출해야 하고 수년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조성할 수밖에 없다는 게 현재 한전 입장이다. 발전 부문 한전 자회사는 한국남동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서부발전·중부발전·한국수력원자력 등 6곳이다. 기타사업 부문 자회사로는 한전KPS(051600), 한전KDN, 한국전력기술 등이 있다.

하지만 부채난이 심각한 이들 자회사도 난감한 상황이다. 상당수 자회사들은 “에너지 펀드 조성은 처음 듣는 얘기”라며 당혹스런 반응부터 보였다. 한 자회사 관계자는 “2조원 규모의 펀드는 사업개발 예산 수준으로 작은 돈이 아니다”며 “현재 회사 사정을 고려하면 부채 감축을 비롯해 재정이 여의치 않은 상황인데 어떻게 펀드를 조성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전은 2013년부터 흑자로 전환돼 매년 순이익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부채가 큰 상황이다. 2014년 기준 한전 부채는 108조8833억원(이하 연결결산 기준), 부채비율은 199%였다. 지난해에도 부채는 108조5925억원(3분기 기준)에 달했다. 더군다나 중부·남부발전 등 한전 자회사들은 사장이 수개월째 공석 상황이라 정상적인 의사결정도 불가능한 상태다.

배준호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산업부가 펀드 조성을 포함해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에너지 관련 기관들과 충분한 협의 없이 정책을 추진했을 경우 예산 낭비, 관치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어 충분한 사전협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전은 정부가 최대 주주인 독점 공기업이기 때문에 정부 주도의 사업이 가능하다. 민간기업의 팔을 비트는 관치 논란이 똑같이 적용될 순 없다”며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공급자 중심 산업정책으로는 시장환경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제는 수요자 중심, 민간 중심으로 정책방향을 전환하겠다”며 “관계부처·기업·국회 등과 더 큰 차원의 소통을 이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사진=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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