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기자와 만난 인수위 경제분과 모 전문위원은 대뜸 이 말을 뱉은 후 황급히 사무실로 사라졌다. 이후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혔다. 인수위원이나 인수위 실무자들은 사무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직후 열린 인수위 1차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인수위가 언론 성향을 조사했다는 보도와 관련 "차기정부에서는 그런 일이 용납돼서는 안된다"고 '불호령'을 내렸다.
12일 모 일간지는 인수위가 언론사 간부들과 산하기관 단체장을 대상으로 언론 성향 조사를 지시했다며 관련 공문서를 공개한 바 있다. 인수위는 사실 확인 직후 이런 지시를 내린 전문위원을 인수위에서 보직 해임했다.
이런 조치는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이 당선자의 철학에 따라 취
해진 것.
그러나 '불똥'은 딴 곳으로 튀고 있다. 인수위가 이런 저런 이유로 보안을 부쩍 강조하자 인수위에 파견된 공무원, 교수들이 아예 기자들과의 접촉 자체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수위 경제분과로 파견된 모 교수는 "인수위 비판 기사를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고 '경고'를 받았다"며 "인수위 활동이 끝나면 보자"고 당부했다. 국정원장 대화록 유출 사건을 본 정부관료들도 "뒤숭숭할 땐 몸을 사리는 게 최고"라며 입을 봉하고 있다.
정부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은 정도가 더 심하다. 기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누가 볼까봐 사방을 경계할 정도다.
참여정부의 언론취재 선진화 방안 중 기자들의 반발이 가장 심했던 것이 기자와 공무원들의 대면 접촉을 제한하는 조치였다. 이 대책은 "기자들이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담합이나 하고..."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직후 마련됐다. 당시 공무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기자들과의 접촉을 피했다.
물론 이 당선자의 이날 발언은 노 대통령의 발언 취지와는 180도 다르다. 하지만 기자들에게는 노 대통령이 발언했을 당시와 똑같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인수위의 언론기피 현상은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한국은행 독립성 문제로 인수위 경제분과가 발칵 뒤집어졌던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모 경제지의 경우 강 차관과 일부 인수위 관계자의 발언만으로, 인수위가 금융통화위원회와 한은 집행부를 분리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를 써 결과적으로 오보를 생산했다.
인수위가 출범한 이후 이런 '묻지마 기사'는 줄을 잇고 있다. 심지어 미확인 기사가 나오고, 이를 다시 다른 매체가 추종 보도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도 현재 분위기로는, 소위 '인수위 관계자'들이 오보에 대한 대응마저 삼가고 있을 정도다. 이런 현상은 기자들이 공무원들과 다양한 대화 채널을 갖지 못할 때 종종 발생한다.
외국에서는 BMW, GE(제너럴일렉트릭)와 같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도 기자들과의 만남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자칫 회사 기밀이 유출되지 않을까?" 이런 물음에 대해 한 외국계 회사 관계자는 "알려야 할 것과 알리지 말아야 할 것을 판단하는 것도 CEO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설명했다.
새 정부에서도 기자들이 대변인 '입'만 쳐다봐야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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