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40년 전 '공연 금지' 연극이 던지는 도발적 질문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구 소련 극작가 라주몹스까야 작품
구시대 몰락 그렸다는 이유로 중단
불편함 속 선악·도덕·욕망 질문 던져
  • 등록 2020-07-02 오전 5:30:00

    수정 2020-07-02 오전 5:30:0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본 공연은 극의 전개에 필요한 특정 장면 묘사에서 다소 충격적이고 불편함을 드릴 수 있습니다.”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의 티켓 예매처에 적혀 있는 안내 문구다. 제목만 보고 스승의 은혜를 전하는 따뜻한 연극을 기대했다면 큰 오산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극 전개가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선과 악, 도덕과 부도덕, 욕망과 정의에 대한 복잡한 질문을 담은 도발적인 작품이다.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의 한 장면(사진=아이엠컬처).


이야기는 생일을 맞은 고등학교 수학 선생 엘레나 세르게예브나의 집에서 펼쳐진다. 네 명의 학생 랄랴, 빠샤, 비쨔, 발로쟈가 생일을 축하한다며 늦은 저녁 엘레나의 집을 불쑥 찾아온다. 당황스럽지만 웃음으로 학생들을 반기는 엘레나. 평온함도 잠시, 학생들은 조심스럽게 엘레나를 찾아온 이유를 털어놓는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학교 금고 안에 있는 시험지 답안을 고쳐야 한다며 엘레나가 갖고 있는 금고 열쇠를 달라는 것이다.

원작 희곡은 구 소련의 극작가 류드밀라 라주몹스까야가 1981년 청소년에 대한 극을 써달라는 정부 요청에 따라 쓴 작품이다. 그러나 구시대의 몰락과 혼란스러운 이데올로기를 그렸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오히려 공연이 금지됐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개방정책을 펼친 1987년이 돼서야 공연을 재개할 수 있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의 문제의식은 유효하다. 신념과 양심을 지키며 살아온 엘레나, 성공과 부를 위해서라면 양심을 버릴 수도 있다고 믿는 네 학생의 대립은 최근 한국 사회의 화두인 계급과 불평등, 세대 갈등을 연상케 한다. 금고 열쇠를 두고 펼쳐지는 이들의 이야기는 선과 악, 도덕과 부도덕 같은 상반된 가치에 대한 첨예한 질문으로 관객을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작품이 불편한 또 다른 이유는 상반된 대립 속에서 그 어느 편도 들지 않는 냉정함 때문이다. 욕망에 충실한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거부할 수 없다는 비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판단이 녹아 있다. 객석을 무대 정면이 아닌 측면에 배치한 것도 인상적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들을 옆에서 지켜보도록 해 극에 대한 몰입 대신 관찰과 판단을 하게 만든다.

2007년 국내서 초연한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2017년부터 공연제작사 아이엠컬쳐가 제작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올해는 대학로 대표 연출가 김태형이 연출을 맡았다. 우미화, 정재은, 양소민(이상 엘레나 역), 김도빈, 박정복, 강승호(이상 발로쟈 역), 김슬기, 오정택(이상 빠샤 역), 최호승, 김효성(이상 비쨔 역), 김주연, 이아진(이상 랄랴 역) 등이 출연한다. 공연은 9월 6일까지.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의 한 장면(사진=아이엠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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