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경아 신영증권 수석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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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경아 신영증권 선임연구원] 한국 최초의 조선기업, 1937년 조선중공업이 바로 한진중공업의 전신이다. 건설사업부는 1967년에 설립된 대한준설공사와 1968년에 설립된 한일개발로부터 시작됐다. 시작이 빨랐던 만큼 “업계 최초”,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었다. 국내 최초 수출선 건조, 국내 최초 국산경비정 건조, 국내 최초 석유시추선 수출 등은 한진중공업이 세운 기록들이다.
한국의 조선업체들은 1990년대 말부터 본격적인 성장기에 진입하고, 2000년대 초반부터 말 그대로 호황기를 누리게 됐다. 선주들의 선박 대형화 및 고사양 요구에 발빠른 설비 증설로 대응하면서 수주를 해낼 수 있는 것은 한국 조선업체들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은 국내 사업장 규모의 한계에 부딪혀 중소형 조선소로 남게 됐다.
2005년 10월 기존의 한진그룹에서 계열분리한 한진중공업은 국내에서의 성장 한계를 고려해 성장동력을 찾기 시작했다. 필리핀 수빅에 조선소를 세우면서 도크를 대형화했다. 필리핀은 궁극적으로 인건비가 중요한 사업이라는 점을 고려해 선정한 입지이다. 장기적으로 중국 조선업체와 경쟁을 하더라도 경쟁력을 가질만한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1972년 민다나오섬 도로공사 시절부터 진출했던 지역인 필리핀을 성장거점으로 잡았다.
해외투자비중을 늘린 만큼 국내에서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국내 영도사업장은 특수선 건조부문을 제외하고, 상선 건조부문의 몸집을 최대한 줄였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한진중공업의 국내 영도사업장의 일반상선 수주량은 한 척도 없다. 해당 시기에 다른 경쟁업체들은 초대형 해양플랜트를 수주하고, 수주물량을 건조하기 위해서 설비 및 인력투자를 감행했다.
연이은 투자로 2013년까지 국재 대형 조선업체들은 외형성장을 이어갔다. 한진중공업의 외형이 연이어 줄어들었던 것과는 반대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모든 시장에 끝없는 팽창이란 있을 수가 없다. 최근 국내 조선업체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몸소 경험하고 있다. 설비와 인력을 기존에 수주한 해양설비 건조에 맞춰서 지속적으로 늘려오고 있는데, 설계기술, 건조경험, 유가하락이 겹치면서 창사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적자를 기록 중이다. 기존 수주물량 소화를 위해 불황 속에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늘렸던 인력들에 대한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어 사측과 노조의 불협화음은 더 커지고 있다.
한국의 조선업은 앞으로도 어려운 시기를 장시간 더 보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계 필요선복량 대비 과잉설비에 대한 구조조정이 완료되기 이전까지 다같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버티기’뿐인데, 아직까지 15% 이상의 과잉설비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통해서 체력을 비축해 놓은 업체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을 것이다. 불황기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업체는 내 살을 가장 많이 깎아본 업체다. 필자의 생각에는 한진중공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