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새로 정착한 ‘화성’에서 임씨가 보내는 시간은 ‘지구’때와는 다르다. 지구에서는 모든 과정이 결과를 향해 달려간다. 화성에선 모든 과정이 결과다. 결과를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다. 그저 매 순간을 즐기면 된다.
해고통지에 노후준비 소홀 후회
찬바람이 세차던 불던 날 바리스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임씨를 만나기 위해 퀸시바를 찾았다. 임씨는 불과 몇년 전만해도 국내 대표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에서 임원까지 오른 성공한 직장인이었다. 삼일회계법인을 퇴직한 뒤 잠시 금융회사에 고문으로 몸 담았던 임씨는 고문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아프리카 커피를 제대로 서비스하는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을 차리겠다고 결심했다. 퀸시바는 1억원 미만의 소자본으로 개업해 직원없이 혼자 운영하는 가게다.
그의 커피 사랑은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20대부터 다방커피 대신 원두커피를 즐겨 마셨다”며 “시간이 날 때마다 맛있는 커피집을 찾아다니면서 언젠가는 커피와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연했던 생각이 구체화 된 건 6년 전 예고도 없이 찾아온 임원계약 해지 통보 덕분이다. 당연히 임기가 연장될 것이라고 생각해 아무 준비도 없던 그에게 회사는 날벼락 같은 해고통지서를 보냈다. 그는 당시 준비없이 찾아온 노후의 쓴맛을 봤다고 했다. 다행히 실업자 생활은 길지 않았다. 회계사로서 쌓은 경력을 기반으로 대형 금융회사의 고문 자리를 구했지만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창업준비에만 5년 투자”
그는 “본격적인 창업 준비는 금융회사 퇴직 후에 시작했지만 5년 가까이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해 왔다”며 “커피업계 최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가게 문을 열때까지 아내와 형 그리고 마음 맞는 인테리어 전문가가 함께 했다. 커피숍의 이름과 메뉴를 결정하고,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는 과정에 들어간 시간은 6개월에 불과했다.
2013년에 문을 연 퀸시바는 오직 아프리카 커피만으로 승부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서촌의 명물 카페로 자리 잡았다. 임 씨는 “단 한번도 비용을 들여 블로그 마케팅을 해 본 적이 없다”며 “맛있는 커피집으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예상보다 빨리 유명세를 탔다”고 말했다.
“치열하게 살아야 인생 2모작도 성공”
진심으로 하고 싶던 일을 하며 살게 된 지금, 그는 아무리 일이 많아도 힘들지 않다. 머리를 쓰는 회계사에서 몸을 쓰는 바리스타로 직업을 바꿨지만 몸이 고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가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일은 ‘1인 커피숍 창업’ 컨설팅이다. 퀸시바를 창업하며 쌓은 경험을 밑거름 삼아 5주과정의 커피 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다. 두명의 제자가 임씨의 커피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창업에 성공했다.
임씨는 제2의 인생을 즐기며 살기 위해서는 제1의 인생에 충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재정적으로 어려우면 제2의 인생도 생계유지의 수단으로 전락하기 십상입니다. 치열하게 살아온 삶을 보상받는 게 제2의 인생이지요. 제2의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는 지금 몸담고 있는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