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화장품 회사의 주인, 주식 부호 3위. 서경배 아모레퍼시픽(090430)그룹 회장의 서재는 어떨까. 평소 이야기와 역사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주인의 인격을 닮았다면 아마도 고아(古雅)하리라던 예상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서 회장은 “책을 읽는 것도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정해야 한다”며 “그래서 청년 시절에는 책 읽기에 대한 나름의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해마다 40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고 자신의 독서습관을 먼저 이야기했다. 그가 정한 목표는 일생에 1000권의 책을 읽는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바쁜 일상과 업무에 밀려 책읽기의 즐거움이 허락되지 않는 날이 많다. 독서량이 줄다 보니 과거에 없던 습관도 생겼다.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과 책 속의 인상적인 구절 등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꼼꼼히 적어 책의 가장 앞 장에 끼워 놓는데 이는 훗날 책을 읽던 당시의 자신으로 돌아가 오늘을 반추해보는, 일종의 인생 책갈피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런 그가 최근 다시 정독한 책이 있다.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懲毖錄)’이다. 류성룡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임진왜란 한가운데서 전장을 진두지휘한 또 한 명의 영웅으로 꼽힌다. 드라마 방영 등으로 류성룡의 리더십이 재조명되며 ‘징비록’ 관련 서적은 눈에 띄게 늘었다.
서 회장은 그 중에서 송복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쓴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출판사 시루)를 추천도서로 꼽았다. 그는 “저자인 송복 교수는 여든을 눈앞에 둔 정치사회학자로, 지난 50여 년간 징비록을 연구해 왔다”면서 “400년 전 류성룡 선생이 온 힘을 다해 남긴 한 글자 한 글자에 깊숙이 담겨 있는 의미를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목소리를 류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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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회장은 “지난 봄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고 고백한 뒤 “1945년 선친께서 일구신 회사의 창립 70주년을 앞두고 불확실한 미래를 떠올리니 생각이 많아졌다. 그때 징비록을 접했다”고 했다.
‘징비록’의 요체는 나를 벗어난 불가 항력적인 환경을 탓하고 비통해하기 보다는 자신을 먼저 돌이켜보고 채찍질하라는 데 있다. 그래서인지 서 회장은 회사 창립 70주년을 맞는 뜻 깊은 날에도 들떠하지 않았다. 1991년 태평양화학노동조합의 파업 사태, 1990년대 말 구조조정 등 시련의 순간을 먼저 떠올렸다.
아모레퍼시픽의 5대 화장품 브랜드 가운데 ‘에뛰드’의 실적 부진도 솔직하게 인정했다. “까치는 바람이 가장 세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 그래서 태풍이 불어와도 까치집은 쉽게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 집을 정비하면 바람이 세게 부는 날 까치집의 어린 새끼들은 다칠 수 있다. 다시 까치집을 짓는 마음으로 브랜드를 재정비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징비록’에서 얻은 깨달음은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세상이 평안해도 전쟁을 잊으면 위기가 온다)’다.
서 회장은 “그렇기에 자신을 엄격하게 징비하는 뚝심을 길러 스스로 강해져야 하고, 조급증과 건망증을 버리고 항상 자신을 성찰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면서 “깊은 고민에 혜안을 얻는 순간이었다. 이 책을 읽는 모두가 ‘징비’를 가슴에 새기고 자신의 인생에서 당당히 소중한 역사를 만들어나가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오산 뷰티사업장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기업 아모레퍼시픽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다. 그에겐 이곳이 꿈을 영글게 한 ‘학교’이자 세계인과 경쟁해야하는 치열한 ‘싸움터’,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이 아닐까.
△서경배 회장은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오너이자 최고경영자다. 창업주 고 서성환 선대회장의 차남으로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코넬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1987년 태평양화학에 과장으로 입사해 태평양종합산업 기획부장, 태평양 재경본부 본부장·기획조정실 사장을 차례로 거쳤다. 2006년 아모레퍼시픽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2013년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지난해 총자산 66억 달러(7조8000억원)로, 블룸버그가 발표한 ‘세계 200대 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이끄는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포브스 선정 ‘세계 100대 혁신기업’ 28위에 꼽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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