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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아, 저 여자. 너무 예뻐. 아름다워.” 대사 한마디에 객석은 금세 웃음바다다. 그러더니 이내 깊은 탄식이 흐른다. “아, 젠장.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을 망쳤어. 내 나이 마흔일곱이 되도록 진정한 삶이 없었어.” 배우 기주봉이 가슴을 치며 울부짖는 모습은 바냐 그 자체였다.
마을의사가 키스하자고 조르자 “까짓 거, 평생에 한 번인데…”라며 능청스러운 제스처를 선보인 옐레나 역 김지숙의 연기 내공은 역시 달랐다. 또렷한 발음과 무대 전체를 울리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극장을 나온 뒤에도 오래도록 귓가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왕년의 스타들이 오랜만에 현역무대로 돌아왔다. 이윤택(64)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과 배우 기주봉(61), 김지숙(60), 이용녀(60) 등 1980~1990년대 대학로를 주름잡던 중견 연극인들이다. 2014년 40~70대 연극인이 모여 구성한 ‘중견연극인 창작집단’의 두 번째 작품 연극 ‘바냐 아저씨’는 능청스러우면서도 맛깔스러운 연기로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김지숙은 9년 만, 아스트로프 역의 곽동철은 7년 만의 무대다. 기주봉은 자신이 운영하는 극단 76단 무대에는 자주 서지만 다른 작품에선 많이 볼 수 없었다. 이봉규·이용녀·이재희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20, 30대 배우가 주류인 연극계에 중년배우가 설 자리가 많지 않다”고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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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숙은 “김성녀, 예지원에게 옐레나 역을 부탁했으나 배우 조련사로 유명한 이윤택 선생과 한다는 말에 다들 고사했다”고 웃었다. 이어 “연습시간에 대신 리딩을 해주다가 어떨결에 하게 됐다. 예쁜 옐레나 역을 위해 한달 만에 몸무게 6㎏을 뺐다”고 귀띔했다. 기주봉은 “뭔가 하고 있다는 게 좋다. 바냐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바냐가 돼가고 있구나 생각한다”며 웃었다.
‘연극판 전원일기’ ‘시골시트콤’ ‘안톤 체호프의 바냐 삼촌이 이렇게 웃기고 재밌을 줄 몰랐다’는 평단의 호평을 얻은 작품은 지난 6일 짧은 공연을 마치고 서울 종로구 대학로 SH아트홀에서 16일부터 내달 10일까지 앙코르공연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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