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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나 영화 속 묘사가 한몫했을 거다. 골프장 장면에서 ‘선’한 담론이 오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좋게 말하면 전략, 나쁘게 말하면 모략이 작전세력의 ‘나이스샷!’과 함께 스멀스멀 뻗쳐나올 뿐. 결정적으론 ‘정치인이 좋아하는 운동’이란 게 이유일 수도 있다. 뭔가 ‘클리어’하지 않다는 건데. 은밀한 거래를 하는 듯한 인상 같은 것 말이다. 그렇게 보면 골프와 정치인 중 손해를 본 쪽은 골프다.
그런데 정치인은 어쩌다가 골프와 친해졌나. 세 가지쯤으로 요약된다. 사람 만나는 데 억지스럽지 않다는 것, 비밀스러운 대화에 안성맞춤이란 것, 일상과 격리돼 있다는 것. 정치인 중 대장 격인 대통령이 골프를 하는 이유에는 두세 가지가 더 붙는다. 정치활동의 일부로, 자기과시를 위해. 하지만 대개는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목적이 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말한 ‘4시간의 자유’는 괜한 소리가 아니다.
정치인의 골프사랑은 골프를 즐긴 대통령을 꼽아봐도 자명해 보인다. 한국에선 박정희·전두환·노태우·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이 골프를 좋아했단다. 미국에선 첫 골퍼 대통령인 윌리엄 태프트 이후 오바마까지 17명 중 골프를 안 한 이는 셋뿐이고. 덕분에 여기서 흥미로운 지표가 완성된다. 골프스타일을 보니 정치스타일이 보이더란 거다. 책은 국제정치를 가르치는 현직 대학교수가 정치와 골프의 상관관계를 빼낸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역대 한국의 대통령과 미국의 대통령이 골프를 치면서 다 드러낸 통치스타일을 따져본 것이다. 골프장에서 쓴 정치소사인 셈이다.
▲“골프치지마 경제 살려!” “IS 공습? 난 골프장”
오바마의 골프집착은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까지 임기 5년 동안 214번을 쳤다. 특기는 ‘남의 눈 의식하지 않기’.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사살작전이 진행되는 상황에도 골프를 쳤다. 2014년 미군이 이라크 IS를 공습했을 땐 바로 몇 시간 뒤 골프장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골프를 치긴 쳤으나 슬쩍 이름이 빠진 이가 있으니 김영삼이다. 특유의 어록에 “골프의 단점은 너무 재미있다는 것”이 들어간 적도 있다. 그런데 단칼에 골프를 끊어낸 계기가 있으니 바로 ‘엉덩방아’다. 1989년 김종필과 세 차례 골프회동을 통해 3당 합당을 이끈 성과를 냈지만 그 한 라운드서 티샷을 하다가 그만 엉덩방아를 찧은 것이다. 이후 김영삼은 골프를 끊었다. 나아가 “재임기간 중 골프 안 친다”고 선언해버렸다. “왜? 경제를 살려야 하니까.” 대통령의 비장한 선언은 이내 ‘공직자 골프금지령’으로 치환됐다. 골프가 짧지 않은 동안 ‘금기스포츠’가 되고 ‘몰래하는 운동’이었던 건 김영삼의 ‘업적’이었다.
▲골프 치며 다 드러낸 통치본성
미국에선 빌 클린턴과 오바마가 비교된다. ‘규칙무시형’과 ‘규칙준수형’의 대표주자다. 클린턴은 규칙을 안 지키는 골프로 유명하다. 멀리건을 너무 받아내 ‘빌리건’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전설의 골퍼 잭 니클라우스와 게임을 할 때도 빌리건을 50개나 쳤다는 일화가 있다. 반면 오바마는 알아서 벌타 받고 알아서 타수 계산하는 정직한 유형. 한 홀에서 10타를 쳐도 이걸 다 적을 정도니. 디보트도 메우고 벙커모래도 정리하는 부지런을 떨기도 한다.
▲“골프를 보면 사람을 안다”
딱히 결론은 없다. 재미삼아 읽으면 된다. 드라이버에 실린 역대 대통령의 정치력을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이제와서 어쩔 도리는 없지 않나. 다만 미래의 대통령 감을 고를 땐 유용할지도 모르겠다. 골프채 한번 쥐어주면 성격·도덕성·정치성향·통치유형까지 주르륵 다 빠진다는 저자의 판단을 믿어보면. 저자는 특히 규칙준수를 중시했다. 골프규칙은 골프장에 들어서는 순간 누구나 하는 무언의 약속이 아니냐고. 지키지 않는 게 이상하다는 거다.
하나만 덧붙이자. 올 초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골프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박근혜 대통령은 골프를 치지 않는다. 못 치는지 안치는지 모르지만 아쉽게는 됐다. 저자나 독자나 얘깃거리 한점을 뚝 떼어낸 셈이니. 통치스타일이 골프로만 알 수 있는 거냐고 따진다면 할 말이 없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