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전(前) 기획재정부 장관(사진·68)은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으로 ‘감성지배 시대’라는 키워드를 꺼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지나치게 감성적인 반응에 치우치는 현실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윤 전 장관은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경제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갈등과 분열이 첨예하다”며 “자기 본위로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현실은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 활동에 열악한 국내 여건과 창조경제를 장려하면서도 창의성을 막는 교육환경,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권의 행태도 꼬집었다. 자유와 권리만을 주장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도 비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 대해 누구보다 이상과 희망을 가지고 있다”며 “올해는 사회 전 분야가 반성하고 반추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초석을 다지는 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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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내외 환경이 결코 우호적(favorable)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외의존도가 100%가 넘기 때문에 수출로 먹고 산다고 합니다. 그만큼 대외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죠.
그런데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회복세를 보이는 게 미국 경제밖에 없어요. 유럽은 물론이고 중국은 경착륙이냐 연착륙이냐 해서 굉장히 어려운 과정에 들어가고 있죠. 일본도 아베 총리가 지금 집권 3기에 들어간다고 하지만 아베노믹스가 절반의 성과만을 거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가 밝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올해 작년에 비해 수출 환경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죠.
국내로 눈을 돌려볼까요. 내수는 크게 소비와 투자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소비는 소득이 창출되지 않는 면도 있지만 구조적으로는 가계 부채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사회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반기업·반부자 정서가 팽배합니다. 있는 사람이 지갑을 열어야 하는데 자연스러운 분위기 형성이 되지 못하고 있죠. 그래서 돈 있는 사람들은 해외에서 소비를 하고 있어요. 투자도 기업들이 투자를 망설이고 내부 유보를 많이 쌓아놓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환류세제를 만들었지만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할 기회를 마땅히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박근혜 대통령께서 언급한 ‘신3저’(저성장·저물가·엔저)가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을 거라고들 얘기합니다. 해결책이 있을까요.
우리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이 디플레이션 시대로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말이 있는데 상당 부분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 중에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입니다. 고용이 제대로 창출되지 않으면 이와 연관돼서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 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일자리는 민간부분이 창출해야 합니다. 정부가 하는 건 국민 세금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성장할 것이냐가 문제인데 예전처럼 수출만 늘려선 안 됩니다. 예전에 우리 경제는 노동집약적이라서 수출이 늘어나는 만큼 일자리가 늘었는데 이제는 자동화·자본집약이 되면서 둘 사이 상관관계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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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왜 의료와 관광이 빠졌느냐는 부분입니다. 우선 관광을 보면 우리나라에 지금 중국 관광객이 물밑듯이 밀려오고 있지만 더 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볼거리 측면에서 제주도 한라산이나 북한산, 설악산 등에 케이블카를 놓으면 어떨까요. 설악산은 알프스 못지않다고 합니다. 이곳에 친환경적으로 케이블카를 잘 설치하면 좋은 관광자원이 되고 일자리가 창출됩니다.
의료는 그동안 제가 평소에 강조한 부분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선진 의료기술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제가 알기론 병원 한 개당 최소한 5000개의 양질의 일자리 창출됩니다. 또 의류기기 부터 시작해서 주변 연관산업도 발전합니다.
△올해 경제 정책 중 해외에서 국내로 유턴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문제는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이 국내로 다시 들어올 만큼 우리 기업 환경이 많이 달라졌나 하는 겁니다. 땅값이나 임금, 노조 문제까지 이런 조건들이 해외보다 국내가 더 나을까요? 그런 조건들이 개선이 안 되는데 세금이 싸다고 다시 돌아오겠습니까.
그 뿐인가요. 우리나라 기업 환경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국회에서 기업인을 오라가라 부르는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죄인 취급하고 호통을 칩니다. 국회에서는 국정을 감사하는 거지 민간 상행위를 감사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행정부의 몫이죠.
△정치권은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까요.
요즘은 여야 간 합의해서 경제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고 예산도 연내 처리하고 하는 모습을 보여서 희망이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국회가 나서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걸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미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는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원래 민주주의는 최선은 아니었지만 다른 대안도 없는 상황이죠. 그렇기 때문에 국회에서는 정치선진화와 정치개혁을 위한 토양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것이죠. ‘지대추구’라고 하죠. 다들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비생산적인 활동에 매달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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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지배 시대에 있다고 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세월호 사건부터 시작해서 청와대 문건, 땅콩 회항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이성적으로 대처했는지 말이에요.
우리 시민들이 선진사회로 가려고 하면 소득 수준만 높아서 되는 건 아니거든요. 소득 수준과 함께 소위 성숙한 시민의식이 따라가 줘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물질문명은 발전해 왔는데 거기에 비례해서 정신문명이 따라가지 못했다고들 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사회 전 분야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습니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누가 누구를 나무랄 수 없는 상황이죠.
△사회에 팽배한 부정적인 문화를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까요.
올해 우리나라가 정신사적인 측면에서 크게 전환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는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정부가 잘해야 합니다.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신뢰를 얻기 위해선 정부가 정직해야 해요. 장밋빛 환상으로 국민을 현혹시켜서도 실제보다 비하해서도 안 됩니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고 정치권에서 정부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게 제대로 뒷받침 해줘야 합니다.
국민들도 분열과 갈등을 오히려 조장하는 일부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해서는 심판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창조경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산업사회와 지식정보사회에서 창조란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정보기술(IT)이 지배하는 지금 시대에서는 누가 더 창조적으로 일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창조경제 시작은 교육 현장이에요. 캠퍼스에서부터 개방과 경쟁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게 안 되면 어떻게 창의성이 키워지겠습니까. 창조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교육 현장에서도 같이 노력하는 게 중요하단 거죠.
우리나라를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하는데 개방과 경쟁이 안 되면 사회의 다이너미즘(활력)이 떨어집니다. 다만 개방과 경쟁에서 피해를 보거나 낙오하는 계층에 대해선 사회 안전망으로 흡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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