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동안 올라가 본 산이다. 1000m급 한라산부터 5000m급 킬리만자로까지 트레킹을 하거나 등반 여행으로 다녀봤다. 산을 정복 대상으로 삼는 등산보다 나와 혼연일체가 되는 입산의 친구로 다가갔다. 그 속에서 겪은 뼈아픈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 뼈아픈 깨우침을 준다. 혼자서는 깨우칠 수 없는 소중한 교훈, 모든 등반은 동반이다. 산은 올라가면 시계를 봐야 하지만 사막은 횡단하며 나침반을 봐야 한다.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지점까지 올라가야 하는 산과는 다르게 사막은 속도보다 방향 설정이 중요하다.
인생의 2분의 1을 달려온 서툰 오십이 될 즈음, 서두르는 나의 또 다른 오십에게 어떤 삶을 선물로 줄까 고민했다.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은지 책상에 앉아서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만 상념의 파편이 들락날락할 뿐 뚜렷한 대안도 분명한 계획도 떠오르지 않았다.
절반으로 줄이고 두 배로 늘리면 유일한 ‘나’가 된다. 진정한 나를 만나는 한 가지 방법은 관성대로 살아가는 삶, 타성에 젖어 살아온 삶, 원심력대로 살아가려는 욕망의 끈을 끊고 각성과 탄성이 인도하는 삶, 구심력으로 자기 존재를 지키려는 삶을 사는 것이다. 세상이 끌고 가는 삶, 다른 사람의 욕망을 욕망하는 원심력에 지배당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하면 몰입하는 힘이 생기는 일, 나를 끌어당기게 만드는 구심력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 때가 바로 오십이다. 원심력이 끌고 가는 삶에서 벗어나 구심력이 이끄는 진정한 나를 만나는 삶을 위한 방향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절반의 철학은 형이상학적 주장이나 관념적 진술이 아니라 삶의 밑바닥에서 건져 올린 성찰의 거울이자 파란만장한 삶이 선물로 주고 간 파란 문장이다. 절반의 철학은 우여곡절의 삶과 시행착오가 남기고 간 얼룩이 판단착오를 줄이는 깨달음의 무늬로 직조된 실천적 지침이자 구체적인 처방전이다. 전반전의 끝(end)에서 또 다른 끝을 끝없이 만나서 연결되는 그리고(and)의 삶이 후반전의 삶이다. 여러분을 전반전의 끝에서 후반전이 시작되는 ‘끄트머리’의 세계로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