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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대(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 운동권 출신으로 자신이 속한 세대의 위선과 부패를 고발하는 시들을 줄 곳 써 왔고, 많은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2017년 문단의 큰 선배 시인 고은의 성폭력을 폭로한 시 ‘괴물’을 발표하며 문단 내 기득권층의 위선을 고발, 문단 내부와 전투 중이다. 2019년 고은 시인이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리했지만 이미 출판계에서 최 시인은 경계 밖의 인물이었다. 책을 내주겠다는 곳이 없어 출판사를 직접 차렸다. 때론 조용하게, 때론 거칠게 문단의 권력에 분노하고 정치·사회적 발언에 주저하지 않는 최 시인은 오늘 또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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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이 산문집 ‘난 그 여자 불편해’(이미출판사)로 돌아왔다.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2009년) 이후 무려 13년 만에 낸 산문집이다. 책은 최 시인이 2015년부터 최근까지 매체 등에 발표한 글을 3부로 엮었다. 스포츠 마니아인 만큼 축구 야구 수영 테니스 등 종목을 망라한 그의 유난한 스포츠 사랑과 일상 얘기부터 최근 고은 시인의 복귀 논란까지 그에게 일어난 일들을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법정 다툼을 앞두고 쓴 글 ‘진실을 덮을 수 있을지’(15쪽)에서 그는 “분노와 막막함이 지나가니 전투 의지가 솟는다”며 강단 있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어느 신년 모임’(22쪽) 글에선 “내가 뜨고 싶어서 (성추행 당했다고) 거짓말을 꾸민 거래. 그래서 인터뷰 거절한 문자들을 캡처해 증거로 제출했어. 이런 것까지 시시콜콜 증명해야 하니 치사하고 더러워”라고 자신을 다독인다.
미투는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 사건 이후 “새 시집을 내고 싶은데 선뜻 나서는 출판사가 없었다. 아, 나는 이제 이 바닥에서 끝났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나혜석처럼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하지 않으려고 출판사(2019년)를 차렸다”고 했다.
정치나 사회, 여성 문제에 먼저 목소리를 내는 것과 관련해선 “원고 청탁이 올 때부터 주제를 정해 준 경우가 있다”고 짧게 말했다. 미투 이후 문단계 분위기를 묻자 최 시인은 “나는 문단계 ‘아웃사이더’라 거기 요즘 분위기를 모른다”며, 만약 고은 시인이 과거 만행을 사과한다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생각해본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2018년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공론화했던 그는 지난달 고은 시인의 문단 복귀 논란 이후 쓴 글에서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권력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나는 지켜볼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적인 메시지가 담긴 글을 쓰기 힘든 사회적인 분위기에 대해서도 “누구의 눈치를 봐서가 아니라, 그들의 심기를 건드려 귀찮은 일이 생길까 봐 바른말 하기가 힘들어졌다”며 “우리 사회 표현의 자유가 많이 후퇴했다”고 꼬집었다.
출판사는 책 소개에서 “시인의 글은 아프고 따뜻하면서도 신랄하다”며 “고은 시인과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치르며 진실을 위해 싸우고 승리했던 과정을 기록한 글들은 역사의 증언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최 시인도 책 서문을 통해 “기록하지 않으면 허공에 흩어졌을 시간들이 번듯한 형체를 갖추어 책이 되어 나왔으니, 문장이 모여 삶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내 글을 읽은 독자들, 내 편이 되어준 분들, 여러분이 힘을 보태주어 승리했다”고 적었다.
최영미 시인에게 향후 계획을 물었다. 역시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차기작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아요. 이미출판사 재고를 줄이는 게 앞으로 몇 달 제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