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제2 모뉴엘', 회계사가 잡았다?

감사반, 2014년 감사보고서 '의견거절'…"대주주 대여금, 어디 썼는지 자료 안줘"
재고자산 '0원', 신규 매출채권도 몽땅 손실처리…이런 회사가 장관 표창도 받아
  • 등록 2015-06-14 오전 10:50:07

    수정 2015-06-15 오전 11:57:44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허위 수출 실적으로 은행권에 3조원대 거액 대출을 받은 모뉴엘 사태. 이에 대한 금융당국의 분식회계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똑같은 방식의 수출 금융 부정 행위가 있었습니다. 메르스 여파로 묻힌 뉴스가 됐지만, 이른바 ‘제2의 모뉴엘’로 불리는 기업도 부당 대출 금액만 1500억여원에 달했지요.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11일 H사의 갑씨는 생산원가가 2만원인 TV캐비닛을 개당 2억원, 총 1563억원으로 부풀려 일본 M사로 수출 신고를 하고 물품은 갑씨의 아내 명의로 설립한 미국의 P사로 발송했습니다. 이후 이 허위 수출 매출채권을 은행권에 팔아 돈을 유용했고, 수출 채권 만기가 되면, 같은 방식의 위장 수출을 반복해 은행권 대출을 돌려막았습니다. 관세청 조사대로라면 이 H사의 갑씨는 원가를 부풀리고 매출채권도 가짜였으니 분식회계를 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회사를 감사한 회계사가 감사를 잘못한 것일까요?

이번 사건에서는 범인을 회계사가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우 공인회계사 감사반 소속 회계사는 2014 회계연도의 감사의견을 ‘의견거절’로 제시했습니다. 회계 기준에 맞게 재무제표가 작성됐는지를 살펴보기 힘들 정도로 회사가 자료를 주지 않았다고 외부에 알린 것입니다.

감사보고서를 보면, 회사가 대표이사에게 자산총계의 49%에 달하는 58억원을 대출했지만, 사용처에 대한 명확한 자료나 상환 계획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또 기말 외상매출금 86억원도 명확한 회수금액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내용의 감사보고서는 올해 4월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됐고 관세청도 이 감사보고서를 토대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H사의 재무제표를 보면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선 2014년 재무상태표를 보면 재고자산이 ‘0원’입니다. 창고에 쌓여 있는 자산이 아예 없다는 얘기인데요, 생산 활동을 하지 않아 창고에 보관할 재고품이 없었거나 창고에 쌓인 재고품을 몽땅 허위 매출실적에 반영하기 위해 유령회사로 넘겼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판매시점과 생산시점을 정확히 맞추다 보니 재고품이 남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허위 수출을 일삼아온 기업이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경영을 했을까요?

새롭게 상품을 팔아 늘어난 매출채권을 몽땅 손실처리한 것도 석연치 않습니다. 2013년 33억원 규모의 매출채권은 2014년 86억원으로 늘어나는데 이중 50억원이 대손충당금으로 설정돼 있습니다. 여기에서 회계사가 이 회사의 행위를 보는 관점이 드러납니다. 즉, 서류상회사도 회사는 회사니까 매출채권은 인정하지만, 회수가능성이 없으니 손실로 반영하도록 했지요. 애초에 허위 매출채권으로 보고 분식회계 사건으로 해석하는 관세청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형편없는 회사도 모뉴엘이 그랬던 것처럼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서를 받았고 이 보증서는 은행이 대출을 한 근거가 됐습니다. 또 산업자원부의 무역의 날 장관 표창과 수출의 탑 훈장도 받았습니다. 무역금융 분야 있는 분들이 그러더군요. “수출 증대가 1차적인 목적이라 수출만 된다 싶으면 무조건 지원해준다”고요.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지, ‘허위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는 아닐 겁니다. 수출이 허위이든 말든 무조건 수출 실적만 올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실적주의와 관료주의가 ‘제2의 모뉴엘’ 사태가 터지는 데 한 몫하지 않았을까요? 이참에 부실 저축은행 사태가 터졌을 때처럼 무역보험공사가 보증서를 끊어준 기업에 대한 분식회계 전수조사라도 벌여야 하겠습니다. 경제도 어려운데 국민의 혈세와 예금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니까요.

△자료 : 관세청
▶ 관련기사 ◀
☞ [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두산건설과 중앙대의 '특수하지 않은 관계'
☞ [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얼떨결에 퇴출 면한 저축은행 이야기
☞ [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재무제표로 보는 '가짜 백수오'사건
☞ [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성완종 회장이 말하고 싶었던 것
☞ [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미생' 박과장, 현실에도 있다
☞ [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수사선 오른 포스코의 속사정
☞ [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최규선씨가 보낸 '탄원서'
☞ [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분식회계, 대통령도 자유로울 수 없다
☞ [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횡령 뒤엔 분식회계 '꼭' 숨어 있다
☞ [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대우 사태, 끝나지 않은 얘기
☞ [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 모뉴엘 사태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시선집중 ♡.♡
  • 몸짱 싼타와 함께 ♡~
  • 노천탕 즐기는 '이 녀석'
  • 대왕고래 시추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