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속빈 강정' 안전혁신 마스터플랜

지자체장에 재난사태 선포권 부여, 특별재난구역 남발 우려
100대 세부과제 중 57개 논란 예고, '뻥튀기 예산' 지적도
안전 전문가 "백화점식 계획 버리고 선택과 집중해야"
  • 등록 2015-03-31 오전 7:00:00

    수정 2015-03-31 오전 7:00:00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국무총리실·국민안전처(안전처)가 4개월간 준비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30일 공개했다. 재난안전분야 전문가들은 낙제점을 줬다. 추진 시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크거나 실행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내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시간에 쫓긴 정부가 ‘속빈 강정’격 대책을 꺼내 들었다는 비난마저 나온다.

재난사태 선포권 관련 내용은 논란이 불가피하다. 안전처 장관에게만 부여된 재난사태 선포권을 시·도 지사에게도 부여하겠다는 게 주요 골자다. 시장·군수·구청장은 시도지사에게 재난사태 선포를 건의할 수 있다. 안전처는 “재난관리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초동 대응을 강화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판단은 달랐다. 박인용 장관이 재난대응 책임을 지자체장에게 떠넘기는 모양새라는 지적이다. 박 장관이 무책임한 결정을 했다는 쓴소리마저 나온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한국방재안전학회 상임고문)는 “재난 발생 시 지자체는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으려고 재난사태 선포권을 남발해 특별재난구역을 지정하려고 할텐데 대책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마스터플랜 세부 내용을 두고도 갑론을박이 예상된다. 100대 세부과제 중 57개 과제가 부처 합의가 필요한 법 제·개정 사항이다. 안전처조차도 100대 과제가 순조롭게 실행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방기성 안전정책실장은 “큰 틀에서 합의는 됐지만, 법 조문 등 세부 협의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전대책이 17개 부·처·청에서 취합되다 보니 정작 화재 대책은 뒷전으로 밀렸다. 안전처는 소방방재 분야를 전담하는 유일한 중앙부처다. 하지만 마스터플랜 설명자료에는 화재 대책과 관련해 “안전취약계층에 대한 화재예방대책을 추진한다”는 게 전부다. 수십여 쪽에 달하는 설명자료 중 화재대책 설명은 한 문장에 그쳤다. 최근 대형화재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지만, 마스터플랜에서 구체적인 대책을 찾을 수 없었다.

‘뻥튀기 안전예산’ 의혹이 불거질 정도로, 예산 확보·집행도 난항이 예상된다. 정부가 5년간 투자하기로 한 예산 30조원은 기획재정부와 협의가 끝나지 않아 확정된 예산이 아니다. 국토해양부 등 부처별 건설·토목 관련 예산이 ‘안전 예산’으로 둔갑한 경우도 있다. 30조원 모두 순수한 안전예산으로 보기도 힘들다는 얘기다.

과거 정부에서도 수십조원 안전예산을 투입하기로 약속해 놓고 실제로는 불과 수조원에 그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안전예산은 정치적으로 생색내기가 힘들어 낭비라고 생각하는 정치논리 탓이다. 이 때문에 이번에도 요란하게 발표만 해놓고 흐지부지될 우려가 크다는 게 안전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안전 전문가들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정책을 집행하는 게 해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안전처가 실천을 담보할 수 있는 분야부터 선정해 정책을 추진하라는 주문이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안전처가 성공하려면 백화점 방식이 아니라 맛집 스타일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며 “해경·소방 등 고유업무 분야부터 안전 정책을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인용 장관이 판을 키우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가능한 일부터 소신껏 정책을 집행하는 게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첫걸음이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출처=국민안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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