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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인 이 학교 영양교사는 김씨와 김씨의 동료들을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여사님들이 하는 일은 공사장 잡부보다 험하면 험했지 덜하지 않다. 김씨를 비롯한 오전 근무조는 새벽 5시에 출근한다. 조장 역할을 하는 고참 조리원이 전날 영양교사가 정해놓은 식단에 맞춰 업무를 배분한다. 부지런히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있으면 학생들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배식시간이 된 것이다. 이 학교의 아침 급식시간은 6시부터 7시 반까지다. 8시 수업에 맞추기 위해서다. 전교생 수는 500여명. 특수목적고인 이 학교는 전교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보통 아침에는 400여명 정도가 식당을 찾는다.
학생들이 모두 식당을 빠져나가고 쌓인 설거지들을 정리하고 있으면 영양교사가 얼굴을 비춘다. 오전 8시다. 규정대로라면 영양교사가 아침 급식이 식단대로 나왔는지, 식사량은 적정한지 등을 점검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문제 삼는 사람은 없다.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 평균 12시간을 일한다는 사실을 다들 알기 때문이다.
오전 9시쯤 되자 아침 정리가 끝났다. 동료들과 식사와 티타임을 갖는다. 오전 근무조는 김씨를 포함해 모두 5명이다. 오후 근무조까지 합하면 총 10명이다. 이들 중 오후 근무조에서 일하는 박모(39·여)씨는 무기 계약직인 정규직이다. 하지만 김씨는 박씨가 그다지 부럽지 않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시간이 똑같은데다 받는 급여에도 큰 차이가 없다. 김씨의 하루 일당은 5만원. 처음엔 시간당 5500원씩 계산해 4만4000원을 지급받다가 3개월만에 일당을 6000원으로 올려받았다.
박씨는 아직 근력이 좋아 무거운 물건도 번쩍 들어 올린다. 학교에서는 힘이 달린다고 나이 많은 사람은 정규직 채용을 꺼린다. 박씨의 월급은 130만원 선. 김씨도 비슷하다. 주말이나 휴일에 일하면 수당이 붙어서다. 이 학교는 토요일이나 공휴일에도 학교 식당을 운영한다. 기숙사에 남아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늘 점심 메뉴 메인은 돈가스다. 빡빡한 예산을 어떻게 짜냈는지 큼지막한 돈가스들이 박스째 쌓여 있다. 외국어고등학교라는 간판에 학부모들이 지갑을 순순히 연 때문인지, 이 학교 급식은 일반 고등학교에 비하면 호화스러울 정도다. 학생 일인당 한끼 급식비가 아침·저녁은 각각 4000원, 점심은 4200원이다.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학교여서 그런지 조리실이나 식당 같은 급식시설도 꽤 잘 갖춰져 있다. 오후 근무조인 최모씨(38·여)가 전에 근무했던 중학교는 조리실이 지하에 있어서 햇볕 구경을 못하고 살았다고 한다.
돈가스는 조리하기도 쉽다. 튀겨내서 소스만 부어주면 된다. 손이 많이 가는 김밥이나 유부초밥 등은 조리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메뉴다. 실제로 다른 학교에선 조리원들이 김밥을 다 말지 못해 일부 학생들에게 재료만 나눠줬다가 ‘셀프 김밥’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서 웃음거리가 됐다고 한다.
퇴근하던 김씨는 점심과 저녁을 학교에서 먹는 큰 아이의 급식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했다. 일반고인 큰 애 학교는 식당이 없어, 교실에서 배식을 한다고 했다. 배식원도 부족해 학생들이 당번을 정해 조리실에서 밥을 타다 먹는다니, 김씨는 한창 공부할 시간에 그래도 되는지 걱정이다. 매일 쓸고 닦는 식당과 달리 교실은 먼지도 많고 위생 상태도 별로일 텐데. 점심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한다. 저녁밥은 외부 급식업체가 공급하는 위탁 급식이어서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푸석한 밥과 함께 식어버린 반찬이 나오기 일쑤라는 것이다.
밥상을 보면 그 집안 살림살이를 알 수 있는 법이다. 김씨는 허리가 휘는 한이 있더라도 중학생인 둘째는 반드시 자사고나 특목고에 보내야겠다고 결심하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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