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으로 가는 노후]"일식이·이식놈·삼세끼..남 일인 줄 알았는데…"

재능기부 희망해도 인프라 없어 포기
경제력 잃고 학대도..아내에 폭행 2년새 71.5% 증가
  • 등록 2016-02-04 오전 7:00:00

    수정 2016-02-04 오전 7:00:16

100세 시대다. 은퇴한 노인들은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집에서 신문·TV 보는 거 외엔 딱히 할 게 없어서…”

오는 6월 정년 퇴직을 앞두고 1년짜리 공로연수 중인 이모(60)씨는 요즘 한숨이 늘었다. 지난해 7월 35년 간의 공직생활을 사실상 마감했다. 30년 넘게 봉사한 댓가로 1년의 시간을 유예받았지만 ‘제 2의 인생’을 준비하려니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이씨는 “‘일식이·이식놈·삼세끼’란 우스갯소리는 그저 남 얘긴 줄 알았는데…되도록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마음 같지 않다”고 털어놨다.

건강도 챙길 겸 평소 집 근처 불암산에 자주 오른다는 그는 “요즘처럼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는 엄두가 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집에 있으려니 마누라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집에서 취업 준비 중인 둘째 아들도 그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지난 2009년 대기업에서 퇴직한 원모(54)씨는 귀향을 준비 중이다. 광고·홍보 업무를 20년 이상했지만 퇴직 후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워서다. 원씨는 “이공계 출신은 재취업이 비교적 쉬운데 문·사·철 계통의 경우 재취업 기회가 굉장히 적다”며 “재능기부 같은 봉사활동이라도 하고 싶은데 연결 창구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직에서 갈고 닦은 재능을 살려 사회적 기여를 하고 싶어도 관련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탓이다. 원씨는 “사회적으로 공인된 자격증이 없더라도 정부나 지자체가 퇴직 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100세 시대’라 불리는 요즘, 직장에서 퇴직한 ‘5060’ 중년 남성들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집에서 챙겨 먹는 끼닛수에 빗댄 남편들을 가리키는 말에 이어 은퇴 후 중년 남자들이 거치는 ‘세계 4개 대학’이란 ‘웃픈’ 유머도 돌고 있다. 하루 종일 바쁘게 드나드는 ‘하바드대’ 시절도 잠시, 하루 종일 와이프 옆에 붙어 있는 ‘하와이대’·동네 경로당을 드나드는 ‘동경대’·방에 콕 박혀 있는 ‘방콕대’ 순의 처지가 된다는 얘기다.

1980년 7월 무도 특채를 통해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한 이모(60) 경정은 “30여년을 현장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면서도 “올해를 마지막으로 퇴직하면 10여년 전 구입해 둔 남양주 땅에서 텃밭이나 일구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강력계에서 보낸 그는 현직에서의 경험을 글로 묶어 책으로도 펴낼 예정이다. “불러주는 데는 없지만 후배들에게 뭔가 남겨주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산업화·민주화 시대를 온몸으로 겪으며 ‘전쟁터’와 같은 삶을 살아온 이들이지만, 현업에서 물러난 ‘5060 세대’는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경제력마저 없을 경우 아내나 가족으로부터 정신적·육체적 폭력에 시달리기도 한다. 가정폭력 상담기관인 ‘한국남성의전화’에 따르면 아내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도움을 요청한 사례가 지난 2013년 813건에서 지난해 1394건으로, 2년 새 71.5% 급증했다.

전성민 대한은퇴자협회 총괄단장은 “집에 가만 있자니 뭣하고 살림에 한푼이라도 보태기 위해 구직활동에 나서는 은퇴자들이 많다”면서 “기업체 시험 감독이나 지자체에서 하는 강의 등을 연결해 주고 있지만 일자리가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전 단장은 “5060세대가 은퇴 후 삶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하고 은퇴 후에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책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오늘도 완벽‘샷’
  • 따끔 ㅠㅠ
  • 누가 왕인가
  • 몸풀기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