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공화국 대한민국]①내 동료가 무너져간다

성인 10명 중 3명 정신병..6명 중 1명 "자살 생각"
법원공무원·금융社 직원 60% 우울증..30% 심각 수준
알콜중독·우울증 중심 입원환자 꾸준히 증가
  • 등록 2012-07-13 오전 8:20:34

    수정 2012-07-13 오후 2:18:23

[이데일리 김도년 김상윤 기자] 30대 회사원 김모씨의 귀엔 언제나 자신을 험담하는 소리가 윙윙거렸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늘 불안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손가락질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결국 병원을 찾은 김씨. 정신과 전문의는 그를 조현병(정신분열병)으로 판정했다. 의사는 그에 대해 “최근 심각한 업무 스트레스를 겪으면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지속적인 약물치료와 상담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김씨와 같은 회사원은 물론 수험생과 노인 등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 하루에 진료하는 환자만 50여 명은 넘는다”고 강조했다.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서울의 한 종합병원 정신과에서 전문의 상담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제껏 정신질환은 소수의 ‘특정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병으로 알았다. 그래서 유명인들의 우울증이나 조울증은 늘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일부 특정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미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각종 범죄로 이어지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최근 정부의 실태조사 결과는 정신병이 서서히 ‘국민 질병’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2011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8세 이상 성인 10명 중 3명(유병률 27.6%)이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내버스 승차 정원이 40여 명이라고 보면 한 버스에 12명은 정신병을 앓은 적이 있는 사람이 타고 있는 셈이다. 또 6명 중 1명(15.6%)은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고 정부가 추산한 최근 1년간 자살시도자만 10만8000여 명에 달했다. 지방 중소도시 인구 규모에 달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최소 한 번 이상은 자살을 시도해 본 적이 있다는 얘기다.

이데일리가 입수한 2011년 법원 공무원, 증권사 등 금융회사 직원들의 정신질환 실태는 가히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법원공무원노동조합과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이 지난해 말 녹색병원에 의뢰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울증은 법원 공무원 3005명 중 61.6%가 가벼운 우울증 이상의 증세를 보였고 정신과 상담 대상인 중증 우울증 이상의 증세를 보인 직원도 무려 29.1%에 달했다. 10명 중 3명은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했다.

금융회사 직원들도 만만찮았다. 총 5632명 중 58.6%가 가벼운 우울증 이상의 증세를 보였고 중증 우울증 이상도 26.5%에 이르렀다.

자살 충동은 ‘최근 1년간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한 법원 공무원은 4명 중 1명(23%)꼴이었고 금융회사 직원은 7명 중 1명(15.2%) 수준이었다.

이상원 법원공무원노동조합 국장은 “인력과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업무량이 많아져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우울증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법원 공무원 사망자 7명 중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2000년 이후 10여 년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환자 수도 꾸준히 늘었다.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이 집계한 정신병원 입원환자는 지난 2000년 5만990명에서 2010년 7만5282명으로 47.6%가량 증가했다. 특히 알콜중독(137.8%)과 우울증(82.5%)으로 입원한 환자가 가장 많이 증가, 스트레스성 정신질환들이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정신질환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뚜렷이 보여준다.

정신질환자들이 사회 곳곳에 늘어나고 입원환자도 늘고 있지만, 이들을 수용, 포용할 수 있는 사회복지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점도 심각한 수준이다. 정신병원 입원기간이 길어지는 것도 이 때문인데 우리나라 정신병원의 입원기간은 무려 166일에 달한다. 프랑스(6일), 미국(7일), 독일(24.2일) 등 선진국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길었다.

이중규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퇴원한 중증 정신질환자가 곧바로 가정이나 사회로 복귀하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병원과 사회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복지 시설이 필요하다”며 “우리나라는 정신병원 밖을 벗어나게 되면 갈 곳이 없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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