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3.1절과 현대차

  • 등록 2010-03-01 오후 12:50:12

    수정 2010-03-10 오전 1:56:05

[뉴욕=이데일리 지영한 특파원] 현대차는 지난 1986년 엑셀을 앞세워 미국시장 문을 두드렸다. 그 해 엑셀은 12만대 이상 팔리며, 미국시장 베스트 셀링카 톱 10에 뽑히는 기염을 토했고, 이듬해에는 26만대나 팔렸다.

현대차는 `엑셀 신화`에 크게 도취됐고, 1989년 캐나다 몬트리올 인근 브루몽에 현대차 생산공장을 지었다. 브루몽 공장은 현대차의 북미지역 생산거점이자 한국차의 첫 해외공장이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외견상 현대차는 북미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듯 했다. 그러나 `운`은 그 때까지였다.

▲ 지난달 20일 뉴저지 일본계 대형 마트인 미쯔와(위)와 인근 한국계 대형 마트(아래)의 주차장에는 일본차들로 가득차 있었다.
미국 소비자들은 5000달러에 불과했던 엑셀 가격에 환호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열악한 차량 품질에 `기겁`을 했다. 차 값이 싼 이유를 알겠다거나, 엑셀이 고장 날 때만 탁월한(Excel) 자동차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싸구려`에다 품질마저 나쁜 브랜드로 단단히 낙인이 찍혔다. 더욱이 1990년대 초반 리세션까지 들이닥치자 현대차는 수요부진으로 브루몽 공장의 문까지 닫아야 했다.

하지만 당시의 실패는 현대차에게 보약이 됐다. 1990년대 후반 정몽구 회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현대차의 품질이 빠르게 개선됐고, 1999년 도입한 `10년-10만 마일 보증`은 현대차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품질이 개선된 모델들이 꾸준히 출회됐다.

이에 따라 현대차(005380) 점유율은 1998년 0.6%에서 2001년 2%, 2009년 4.2%로 크게 상승했고, 기아차를 합칠 경우 현대·기아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7%대까지 올라섰다. 그러나 현대·기아차가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지난 달 20일. 허드슨강을 두고 뉴욕 맨해튼과 마주하고 있는 일본계 대형마트 미쯔와의 주차장에는 일본차들로 가득차 있었다. 지난해 일본차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40% 정도였지만 주차장에는 10대중 9대 정도가 일본차였다. 마트 이용자 대부분이 일본 사람이라고 해도 과도하게 높은 수치이다.

인근 한국계 대형 마트의 넓은 주차장도 주말을 맞아 많은 차량들이 주차돼 있었다. 한국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지만, 주차장에서 한국산 브랜드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70~80%가 일본 브랜드였고, 나머지 차들도 대부분 독일이나 미국산 자동차였다. 현대·기아차는 기껏해야 미국시장 점유율 수준 정도에 불과했다.

그제서야 1년 전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한 교포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중고차를 후한 가격으로 되팔 수 있기 때문에 주변의 교민들은 다들 일본차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사실 미국에서 일본차의 중고차 시세는 상대적으로 높게 형성돼 있다. 이는 일본차의 내구성이 그 만큼 좋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영원한 1등은 없다. 미국 다우 지수를 구성하고 있는 블루칩 종목중 지금까지 다우 종목에 살아남은 기업은 제너럴 일렉트릭(GE) 한 종목에 불과하다. 한 때 세계 최고의 전자제품 메이커 소니의 위상 추락은 비즈니스 세계에 `영원한 패배자도, 영원한 승자도 없다`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마침 일본 도요타가 전무후무한 대규모 리콜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리콜을 당한 도요타 모델들의 중고차 가격도 이미 4% 가량 떨어졌다. 예단은 금물이지만, 먼 미래를 내다본다면 도요타가 소니의 운명을 걷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아마도 언젠가 도요타가 뿌리채 흔들린다면 그 배경중 하나는 현대·기아차의 약진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기자는 언제인지 모르지만, 미국의 한국 마트 주차장에 도요타보다 현대차가, 일본 브랜드보다 한국 브랜드가 우위를 점하는 그 순간이 두 나라 자동차 산업의 운명이 뒤바뀌기 시작하는 여러 징후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3.1절을 맞아 기왕이면 미쯔와 주차장까지 한국차로 넘쳐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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