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무침을 꼭 먹어야겠다는 사람이 3명 있었는데 야채가게에 남은 건 두 봉지밖에 없습니다. 먼저 한 봉지를 사간 사람은 1000원짜리를 과감히 2000원에 사 들고 떠났고, 차마 2000원을 내겠다고 결심하지 못했던 나머지 두 사람은 한 봉지를 남겨두고 다시 경쟁합니다. 결국 가격이 더 올랐습니다. 그래서 남은 한 봉지는 3000원에 팔렸습니다.
KB금융은 현대증권을 비싸게 샀습니다. 인수합병(M&A)시장에서 적정가격이 얼마인지 명확한 답은 없습니다만, 대우증권(006800) 지분 43%를 인수한 미래에셋증권(037620)은 당시 시장가치(1조1600억원)의 2배인 2조3000억원에 매입한 반면 KB금융이 현대증권 지분 22.6%(시가 3500억원)의 3배인 1조원을 기꺼이 지불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관련기사 윤종규 “현대증권 인수, 리딩 금융그룹 도약 전기 마련”
자기자본에 인수후 확보할 지분율을 곱한 순자산가치로 비교해도 미래에셋은 대우증권을 1.2배에 샀고, KB금융은 현대증권을 1.5배에 사는 꼴입니다.
당분간 야채가게에 숙주나물만 있고 콩나물은 더 이상 좌판에 깔리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도 파격적 금액을 제시한 것은 분명합니다. 만약 KB금융이 아니라 자금 여력에 의문부호가 붙는 곳에서 이 정도 가격을 써냈다면 ‘승자의 저주’ 논란이 야기될 법한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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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KB금융은 국가신용등급과 같은 신용도(AAA)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자금조달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아주 낮은 초저금리로 회사채와 같은 시장자금을 조달해 인수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조달한 금리보다 현대증권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면 남는 장사입니다.
작년말 기준 국민카드의 미처분이익잉여금은 7000억원대이며, 국민은행도 1조원대의 이론적 배당가능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자회사의 건전성도 생각해야 하기에 여유자금 모두를 배당하라고 지시할 순 없지만, 예년 수준의 배당성향만 유지해도 인수대금의 최소 3분의 1에서 절반가량을 충당할 수 있습니다.
KB금융과 같은 금융지주회사의 투자 여력을 따져보기 위해선 이중레버리지비율(자회사 투자주식 대비 자기자본 비중)도 살펴봐야합니다. 과도한 부채 조달을 통해 자회사 주식을 보유하거나 지원하는 행위를 제한하기 위한 지표로 낮을수록 건전성이 좋다는 의미입니다.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작년말 기준 KB금융의 이중레버리지비율은 106.7%입니다. 현대증권 인수대금(1조1000억원 가정) 전액을 차입으로 충당할 경우 112.7%로 올라갑니다. 그래도 이 수치는 여전히 금융당국의 경영실태 평가시 1등급 기준선인 120% 아래에 머물며, 7개 금융지주회사 평균(117.5%)보다도 낮습니다.
KB금융의 이중레버리지비율이 다른 금융지주회사보다 안정적 수준을 유지해온 것은 상대적으로 비은행투자에 적극 나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지금까지는 돈 쓰는데 몸을 사렸던 KB금융이 이제는 다른 금융지주회사보다 투자여력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장기적으로는 KB금융은 현재 지분 100%를 보유 중인 자회사 KB투자증권과 새 식구가 맞이할 현대증권의 합병을 추진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현대증권 지분율을 더 끌어올리는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첫 번째로 현대증권의 자사주(7.06%)를 매입할 것이고, 시장투자자들이 보유한 지분도 어느 선까지 매입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합니다. KB금융이 온전히 현대증권을 가져오기 위한 돈은 경영권을 가져오기 위해 적어낸 1조원보다 더 많은 금액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다만 KB금융이 현대증권 지분 22.6%를 전액을 차입으로 매입하고 추가로 8000억원 어치를 더 시장에서 사들인다고 가정해도 국내 7개 금융지주회사 평균 이중레버리지비율을 넘어서진 않는 것으로 나옵니다.
야채가게에서 당분간 콩나물이 없을 것으로 생각해 마지막 남은 한 봉지를 비싸게 샀더라도 그만큼 맛깔나게 요리해서 맛있게 먹으면 됩니다.
KB금융에게 인수자금 부담으로 인한 ‘승자의 저주’는 별 다른 고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새 식구를 어떻게 보듬으며 얼마나 아름다운 시너지를 낼 것인지를 담은 ‘승자의 철학’을 지금부터 더 깊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KB금융에 필요한 것, 시장이 기대하는 것은 일치합니다. 승자의 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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