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강조하는 ‘성과주의 확산’ 흐름에 맞춰 영업 실적 등이 우수한 직원에게 파격 승진을 통해 포상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성과급제 확대, 저성과자 퇴출 등 껄끄러운 노사 합의를 추진하는 것보다 인사를 통해 좀 더 쉬운 방식으로 성과주의를 확산시킨다는 은행 경영진의 의지도 담겨 있다.
다만 이러한 파격 인사가 자칫 전시행정식 성과주의로 비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는 점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성과주의의 핵심은 호봉제 중심의 기존 은행권 임금체계를 직군별 성과평가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인데 이 같은 제도적 뒷받침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의 성과주의 인사는 지난해말 우리은행이 선도했다. 우리은행은 정기인사에서 은행권 처음으로 본부 부서장의 연령대를 4~5년 가량 낮췄다. 심지어 다른 은행의 팀장급인 71년생을 부서장으로 발탁하기도 했다. 본부 부서장 55명 중 25명이 교체됐고 지점장과 부지점장급 승진자 85%가 영업점에서 배출됐다. ‘영업 실적’을 기준으로 승진 인사를 단행한 셈이다.
신한은행 뿐 아니라 이처럼 주요 은행들이 파격인사에 나서고 있는 것은 성과 중심의 조직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동안 국내 은행들은 저금리에 수익성이 하락하는 데도 연공서열 호봉제 기반의 고(高)임금 체계를 고수하고 있어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은 호봉제 기반에 성과급제를 일부 결합한 성과혼합형 호봉제를 도입하고 있는데 성과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비중은 25%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성과주의 확산 차원에서 ‘발탁·파격’ 인사가 은행권의 핵심 이슈가 되고 있는 셈이다.
‘성과급제 확대·저성과자 퇴출’은 난제
문제는 발탁·파격인사로 이 같은 성과주의 문화가 얼마나 확산될 수 있느냐다. 은행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선 이 같은 흐름이 바람직할 수 있지만 성과주의 문화가 안착하는데는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는 얘기다. 성과급제를 확대하기 위한 직군별 성과평가 도입, 저성과자 퇴출 등의 제도화가 노조의 반발로 현실적으로 추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권의 영업부서는 성과를 측정하기 비교적 쉽지만 그렇지 않은 부서의 성과 지표는 명확치 않다”고 지적했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가 저성장기조에 빠진 상황에서 성과주의 인사를 강조하는 것보다 화합과 소통의 인사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자칫 청년 일자리 확대를 위해 장년층의 근로자를 퇴출시키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지난해 961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낸 반면 올해 300명의 신입 직원들을 채용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성과주의 문화가 확산되는 데는 결국 직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인사 평가시스템을 확립하는게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발탁인사의 기준이 명확하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그보다는 성과급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상·하, 동료 평가 등을 포함한 열린 시스템을 갖추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