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현재현 회장과 양치기 소년

  • 등록 2013-10-07 오전 7:56:44

    수정 2013-10-07 오전 7:56:44

[이데일리 민재용 기자] 평소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는 교훈을 주는 ‘양치기 소년’ 우화에 한가지 가정을 해보자. 양치기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목장에 올라왔을 때마다 늑대가 도망쳐 양치기 소년이 거짓말쟁이로 오해받게 된 걸로 말이다.

이 경우 양치기 소년은 늑대의 발자국 등을 제시하며 자신이 거짓말을 한게 아니라는 것을 마을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한다. 그래야만 또 늑대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양치기 소년이 그 오해를 못풀어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못 받게 되면 그건 전적으로 양치기 소년 책임이다. 평소 자신의 언행에 대해서도 뒤돌아 봐야 할 필요가 있다.

동양그룹 사태의 핵심에 서 있는 현재현 회장이 언론에 입장을 처음으로 표명했다. 현 회장의 말을 요약하면 경영권 유지는 오래전부터 본인에게 의미가 없었으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를 선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화 하는데 만 주력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현 회장이 언론사에 장문의 편지를 보낸 것은 세간에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오해가 쌓여갔기 때문일 것이다. 현 회장의 말대로 경영권에 관심도 없고 피해자 구제에만 신경써왔는데 경영권 유지에 혈안이 된 악덕 경영자로 몰린 게 억울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세간의 의혹과 오해는 그간 위기를 키워온 현 회장의 자신의 행보에서 나왔다는 점을 스스로 인지할 필요가 있다. 알짜 계열사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매각 협상을 결렬시켰다는 의혹, 주식 매각 대금을 개인적 부(富)를 위해 빼돌렸다는 의심 등이 제기돼 왔으나 이에 대한 제대로 된 해명은 없었다.

동양그룹 사태로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양증권 직원의 유서엔 ‘오늘 아침에 출근할 때도 믿었고 정말 동양그룹을 믿었는데..회장님, 개인 고객들에게 정말 이럴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고객님들 돈 꼭 돌려주세요’라는 내용이 적혀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영권 포기를 선언한 현 회장에게 이제 남은 최대 과제는 스스로 밝혔듯이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 하는 일이다. 아울러 오너 일가가 책임을 회피하고 자산을 챙기려 한다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한다.

그것이 현 회장을 끝까지 믿었던 계열사 직원들과 전 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한 투자자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고 최소한의 예의다.현 회장이 억울한 양치기 소년에 머물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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