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재 안전보건공단 서울광역본부장] 이달 초 노벨문학상 수상식이 열린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엘렌 맛손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이 한강의 작품 세계를 흰색과 빨간색으로 비유해 관심을 모았다. “흰색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며 슬픔이며 죽음입니다. 빨간색은 생명이지만 고통이며 피를 의미합니다.” 색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이자 사회적으로는 약속의 표지로도 사용된다. 직관적인 표현의 방식인 색은 생과 사를 가르기도 한다.
오래 전 “새벽녘 도로변에서 청소를 하던 환경미화원이 자동차에 치여 사망했습니다”라는 뉴스를 자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운전자들의 공통된 진술은 ‘보이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당시 환경미화원의 옷은 어두운 색깔의 작업복에 형광색 줄을 새긴 것이 안전의 전부였다. 업무 특성상 옷은 금세 오염되고 안전을 위한 형광색 줄은 쉽게 퇴색했다. 새벽이나 야간 작업자 사고가 잦았던 이유다.
2012년 1월 건설현장에서 컵라면을 먹던 근로자 10명이 집단적으로 쓰러져 1명이 사망하고 9명이 치료를 받았다. 필자가 사고조사를 위해 현장에 가보니 먹다 만 컵라면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겨울철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가 어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무색무취의 부동액을 식수로 오인해 발생한 사고였다.
위의 두 사고는 ‘보이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운전할 때는 앞을 잘 봐야 하고 무색의 부동액을 사용할 때는 주의사항을 지켜야 한다고 교육받았지만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니 이를 소홀히 했던 결과다.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과 색(色)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쏠렸다. 잘 보이지 않는 대상이나 공간에 색을 활용해 잘 보이도록 개선했다. 실제로 환경미화원의 옷은 형광색으로 바꾸었고 청소 차량은 색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을 적용해 야간에도 잘 보이게 개선했다. 부동액에는 색소를 가미하고 화학물질 표지 부착을 강화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환경미화원의 교통사고와 겨울철 부동액 오인 음용사고는 크게 줄었다.
색이 안전에 미치는 효과는 우리의 일터나 생활속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운전자라면 고속도로 분기점이나 나들목에서 차선 변경으로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바닥에 분홍색과 녹색으로 노면 색깔이 표시돼 당황하지 않고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게 됐다. 현재 고속도로에만 900여 개소 이상 설치됐으며 사고 감소 효과도 약 4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색을 안전에 접목한 효과다.
일터에서도 색을 활용해 사고를 줄이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금속표면처리업체인 비엔스틸라(주)는 색을 이용한 안전 디자인을 통해 사고를 줄였다. 사람과 차량이 혼재돼 이용하는 통로를 색으로 구분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했으며 지게차 등 위험장비 보관 장소를 색으로 표시했다. 소화기는 근로자가 보관 위치를 직접 선정하게 했으며 잘 보이는 색으로 표시해 비상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SK에너지(주)는 안전보건공단과 함께 ‘색으로 산재를 잡자’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정유·석유화학공장의 특성상 장치 구조물 등 곳곳에 산재한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위험 장소와 안전구역, 비상구 등 주요 시설에 색을 활용한 맞춤형 디자인을 적용해 안전을 확보하고 있다. 배달의민족의 물류서비스를 전담하는 우아한청년들은 배달 이륜차의 헬멧과 배달통에 잘 보이는 반사 스티커를 부착해 교통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우리는 사물을 인지하고 지각할 때 대부분의 정보를 시각을 통해 얻는다. 앨버트 메러비안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교수는 저서 ‘침묵의 메시지’에서 사람 간의 의사소통에서 언어적 요소는 7%, 청각적 요소는 38%, 시각적 요소는 55%를 차지한다고 했다. 위험이 일상화한 사회에서 안전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위험을 쉽게 인지하고 빠르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색을 활용한 안전 디자인이 그 해법이 될 수 있다. 위험을 보는 것이 안전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