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밤에 사립문을 지키는 게 너의 임무인데 어찌 대낮에 길에서 이렇게 짖느냐.’(시문야직 시이지임 여하도상 주역약차)
조선 후기 화원 김두량이 그린 ‘삽살개’(방구도·1743년) 위에 적힌 문구다. 영조(재위 1724∼1776)가 자신의 탕평책에 반대하는 신하들을 삽살개에 비유해 꾸짖은 말이다. 날카로운 이빨과 매서운 눈, 정밀하게 묘사한 털 등 생동감이 넘치는 그림은 조선의 화가 김두량(1696∼1763)의 빼어난 실력을 보여준다. 명확한 제작연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 회화사적으로 귀중한 자료다.
영조와 정조(재위 1776∼1800)가 꿈꾼 ‘탕평한 세상’을 글과 이미지로 조명한 전시가 열린다. 영조 즉위 30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이 마련한 특별전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이다. 국보 1건·보물 11건를 포함해 18세기 서화 등 54건 88점을 선보인다. 특히 개인이 소장하고 있어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삽살개’가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박물관 관계자는 “영조와 정조가 탕평 정치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뜻을 글과 그림으로 전하고자 했다”며 “두 왕이 문화예술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활용했는지 살펴보고, 그들이 꿈꾸던 세상을 함께 그려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 조선 후기 화원 김두량의 ‘삽살개’(사진=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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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정조는 정치집단인 붕당들과의 권력다툼,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왕권을 강화하고 혁신적인 정책들을 펼쳤다. 대표적인 것이 ‘탕평’(蕩平) 정책이다. ‘탕평’은 ‘싸움, 시비, 논쟁 따위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공평함’을 뜻하는 말이다. 당쟁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각 당파에서 고르게 인재를 등용하던 정책을 ‘탕평책’이라 부른다.
영조와 정조는 여느 왕들보다 많은 글을 쓰고, 서적을 간행하고, 궁중 그림을 요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문화예술이 지닌 힘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문신 송인명, 박사수 등이 1728년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뒤 관련 자료를 모아 펴낸 ‘감란록’은 반란의 근본 원인을 붕당으로 돌린 점이 눈에 띈다. 탕평의 뜻을 비석에 새긴 ‘탕평비 탑본’, 자신의 즉위 정당성을 한글로 간행한 ‘천의소감 언해’ 등을 전시해 놓았다.
| ‘감란록’(사진=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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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편지도 볼 수 있다. 정조가 1796~1800년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 297통을 묶은 ‘정조어찰첩’(보물)을 비롯해 정민시(1745∼1800)가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써준 시 등을 선보인다.
왕도를 바로 세워 탕평을 이루고자 한 정조의 의지는 7박 8일의 대규모 행사를 통해 드러난다. 1795년 정조가 수원 화성을 다녀온 여정을 8폭 그림으로 표현한 ‘화성원행도’는 왕을 중심으로 신하들이 질서를 이루고 백성은 편안해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영조 역을 맡았던 배우 이덕화가 재능 기부로 음성 해설에 참여했다. 10세 이상 어린이를 위한 별도의 음성 안내도 준비돼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10일까지.
| ‘화성원행도’(사진=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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