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외면한 공시·회계제도]<下>`깜깜이 공시`론 기업도 돈 못구한다

기업활력 불어넣는 공시·회계제도 개선안 분석
`투자판단 영향 적다` 분류된 항목들 투자엔 핵심정보
충당금적립·설비투자계획 등 공시 면제대상에
"수치변동 적은 것도 투자정보…생략해선 안돼"
  • 등록 2016-05-17 오전 6:50:00

    수정 2016-05-17 오전 6:50:00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올 2분기 현대차그룹 소매 판매 성장세 전환에 따른 중국 공장 가동률 회복 기대. 중국 수익 기여도가 높은 자동차 부품 기업에 관심. 관심종목은 만도, 현대모비스, 일지테크” (NH투자증권의 ‘자동차산업’ 분석 보고서)

금융당국이 ‘투자판단에 영향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분·반기보고서 생략 대상 항목으로 꼽은 공장 가동률. 이 정보가 자본시장에 공개됐을 때 일어나는 반응은 한 증권사의 투자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현대차(005380)가 올해 2분기 분기보고서에 전분기보다 회복된 중국 공장가동률을 공시한다면 현대차그룹뿐만 아니라 이 회사의 중국 공장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들의 기업가치도 함께 오를 것으로 분석한다. 반면 시장 기대에 못 미치는 수치를 공시한다면 투자자들은 다른 투자처를 알아보는 합리적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대차의 분·반기별 공장가동률은 중국 내 자동차 부품 회사에 투자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핵심 정보임에도 정부는 ‘투자판단에 영향이 높지 않다’고 분류했다.

충당금 현황이 투자 판단에 영향 적어?? “대우조선을 보라”

금융당국이 ‘투자판단에 영향이 높지 않고 다른 부분에서 기재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생략 대상 항목으로 판단한 대손충당금 설정 현황도 보자. 대우조선해양(042660)의 지난해 3분기 분기보고서 ‘기타 재무에 관한 사항’을 보면 전체 대손충당금 설정률이 직전분기 4.4%에서 12.2%로 크게 올랐다. 크게 오른 부문을 살펴보면 장기매출채권 충당금 설정률이 35.1%에서 61.6%로 크게 올랐고 단기대여금은 아예 99.9%로 상승했다.

△자료 : 대우조선해양 2015년 3분기 분기보고서


장기매출채권은 외상으로 상선을 만들어주고 발주처로부터 받을 돈이다. 이 돈의 충당금 설정률이 뛰었다는 것은 해양플랜트 뿐만 아니라 상선 부문에서의 손실도 급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충당금 설정 금액만 7900억원이다. 이는 회사채나 주식 투자자에게 필수적인 정보이면서 동시에 분식회계를 의심할수도 있는 정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은 이 수치를 들어 분식회계 여부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또 단기대여금 99.9%에 대손충당금이 설정됐다는 것은 빌려준 돈이 몽땅 떼였다는 의미인데, 이 역시도 회사의 리스크 관리 능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투자 정보다.

물론 개별 채권의 대손충당금 적립 상황은 재무제표 주석에서 확인할 수는 있지만, 전체 대손충당금 설정률은 재무제표 이용자가 직접 계산해야 하고 일부 항목은 공시되지 않는 것도 있다. 한 회계학 교수는 “기업 공시 정보는 투자 정보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 학계, 언론, 시민사회가 이용하는 사회적 인프라”라며 “투자 판단에 대한 영향, 분·반기 변동가능성, 다른 부분에서의 확인 가능성 이 3가지만으로 판단해 생략 항목을 결정한다는 것은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한계기업 사외이사 전문성 낮아…“공시 강화가 지배구조 선진화”

사외이사의 전문성도 금융당국은 ‘투자 판단에 영향이 높지 않다’고 했지만 대신경제연구소 조사 결과, 돈을 벌어도 이자를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 대부분은 사외이사의 회계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에 대한 간단한 인적사항은 ‘임원 및 직원 현황’에도 공시되지만,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해서는 사외이사 전문성에 대한 공시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밖에 직원의 현황, 중요한 설비, 주요 투자계획, 타법인 출자현황 등은 구조조정 선상에 있는 기업은 매달마다 변할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분·반기 중 변동가능성이 낮거나 투자 판단에 영향이 낮은 항목으로 분류돼 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변동 사항이 발생하면 반드시 기재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도 기업이 결정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는 셈이다.

또 증권업계에서는 분·반기 중 수치 변동이 없어 생략할 수 있다는 발상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 유가나 환율, 거래가 많은 다른 나라의 경제 상황 등 외부 변수는 변하는데 기업의 중요 시설이나 설비, 주요 투자계획, 생산능력과 공장 가동률 등에 큰 변동이 없다는 것 자체도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에 분·반기보고서에도 생략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주요 경영 사항에 대한 공시가 생략되면 정보 공개 부담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온갖 불확실한 정보가 생겨나면서 결국 기업이 대응해야 할 부담은 더욱 커진다”며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시장을 만들 것이냐, 정확한 정보 유통으로 합리적 선택이 이뤄지는 시장을 만들 것이냐는 결국 정부가 투명한 공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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